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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Dec 21. 2020

신라에만 있는 '여성 탄생 신화'

첨성대에 구멍이 뚫려 있는 이유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세상 절반이 여성인데 남성에 대한 기록들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역사 속 비범한 인물이라면 하나쯤 갖고 있는 '탄생 신화'의 주인공은 더더욱 남성 위주다. 학창 시절 배웠던 국어책, 국사책을 들춰보아도 그렇다. '비범한' 여성의 탄생 신화는 정말 없었을까.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바로 한국인이라면 살면서 꼭 한 번은 갔을 그곳, 경주 여행의 필수 코스 '첨성대'에 말이다.


2020년 12월 21일, 마침 오늘은 천문학적으로도 특별한 날이었다. 밤이 가장 긴 동지고, 목성과 토성이 가까워지는 우주쇼가 펼쳐지기도 했다. 첨성대 관련 글 읽기 딱 좋은 날 아닌가.   



석가모니 탄생 이야기와 비슷한 알영 탄생 신화


여왕은 신라에만 있었다. 이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나 신라에만 여성 탄생 신화가 있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박혁거세 탄생 신화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알영 탄생 신화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알영이란 이름은 알영정이란 우물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알영은 알영정에 사는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마치 석가모니가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을 떠오르게 한다. 알영의 탄생 신화는 처음에는 우물에서 태어났던 이야기였다가, 나중에 용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다거나,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로 재편됐다. 박혁거세 탄생 신화와 달리 알영 신화에 이러한 불교적 윤색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두 탄생 신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다른 것 같다. 아마 정착된 이야기는 불교 수용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성 탄생 신화'인 점을 고려하면 신라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 때나 선덕여왕의 아버지인 진평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선덕여왕>

많은 이들이 고구려, 백제와 달리 유일하게 신라에서만 여왕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을 '골품제도'의 '성골남진', 성골의 남자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는다. 그러나 신라 여왕 등장의 근본적 배경은 불교에 있다. 불교에는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는 여성성불론이 있기 때문이다. 진덕 여왕의 이름 승만을 불교 경전 <승만경>에서 따온 것만 봐도 신라 시대 불교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의 '성스러운 조상을 가진 황제 고모'란 뜻의 '성조황고'라는 존호의 '성조'는 가깝게는 선덕여왕의 아버지 진평왕, 멀게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말하지만 여기에는 박혁거세와 더불어 두 성인으로 추앙받았던 알영의 후손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본다.


첨성대 옆구리는 왜 뚫렸을까요?


다시 첨성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첨성대는 별을 바라보는 천문대다. 천문대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지만 적어도 나라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여기서 하늘의 별을 관측했다고 본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첨성대의 모양이다.

첨성대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첨성대는 선덕여왕이 세웠다. 그 생김새가 마치 땅에서 솟은 우물 모양 같고 옆구리 쪽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우물에서 나온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알영이 태어났다는 알영 탄생 신화와 첨성대 둘 다 선덕여왕 때 만들어졌다면, 이 둘은 관련성이 없을까. 알영 신화를 건축물로 형상화한 것이 첨성대는 아닐까. 첨성대의 모양은 마치 우물 같고 우물에는 용이 산다.(경주 분황사의 우물에도 용이 살았다는 말이 있고 용의 딸인 태조 왕건의 할머니도 우물을 통해 바다를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첨성대 한쪽 뚫린 구멍은 용의 옆구리를 가르고 알영이 태어났던 신화를 담은 것은 아닐까.


<삼국사기>는 오른쪽 옆구리, <삼국유사>는 왼쪽 옆구리


여기서 잠깐. 알영의 탄생 신화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실려 있지만 내용은 약간 다르다. <삼국사기>는 '알영이 우물에 나타난 용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라고 했고, <삼국유사>는 '알영이 용의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라고 했다. 널리 알려진 석가모니의 탄생신화에서 석가모니는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왜 승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는 '왼쪽 옆구리'라고 했을까. 대부분의 연구자는 옆구리가 중요하지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상관없다고 보고 이 문제에 별달리 주목하지 않았다.


뭣이 중한디 싶겠지만 알영 신화 말고도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가 왼쪽 옆구리로 태어난 것으로 바뀌어 정착된 기록이 또 있다. <노자화호경>이라는 경전이다. 노자가 죽은 뒤 인도로 가 다시 석가모니로 태어나 불교를 창시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중국은 외래 종교로 받아들인 불교를 전파할 때, 불교가 중국과 인연이 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노자도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했다가 나중에 석가모니와 다르게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정착됐다. 아마도 알영의 '왼쪽 옆구리' 신화도 <노자화호경>처럼 불교와 도교적 요소를 혼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대표 신전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계의 대표적인 신전으로 무엇이 생각나냐고 물으면 '타지마할', '파르테논' 등의 답이 나온다. 그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전은 무엇인가 라고 물으니 답이 없다. 물어보는 필자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전'이라는 주제로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경주 석불사(석굴암), 서울 종묘, 강화 참성단일까? 첨성대를 우리의 대표 신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계 역사 속에서 우리는 주로 남성의 신전을 떠올렸다. 그러나 첨성대는 알영 탄생 신화를 건축물로 형상화한 여성 신전이다. 여성 신전이 천 년 전 신라의 수도 경주 한복판에 세워진 것이다. 그동안 박혁거세 신화에 묻혀 알영 신화는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새에게 두 날개가 있듯 세상의 반은 여성이다. 신화도 마찬가지여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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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조경철 <나만의 한국사> 책 일부를 토대로 재편집했습니다.

브런치에 연재되는 글은 오랫동안 한국사를 공부하고 가르친 역사학자 '명협 조경철'이 쓰고, 영화 에디터(기자) 출신 편집자가 현대적인 시선을 담아 재편집, 업로드합니다.


* 필진 소개


_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나와 같은 대학에서 석사학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연세대에서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2013년 한국연구재단에서 조사한 인용지수 한국사 분야에서 2위를 했다. '나라이름역사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고자 노력 중이다.  


_편집자 부

대학에서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전공했으며, 매체에서 영화 기자로 근무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쉽고 흥미롭게 편집해 업로드할 예정이다. 트위터 '한국의 맛과 멋' 계정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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