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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Apr 12. 2021

고구려, 발해, 후고구려가 다 고려?

[선공개] 나만의 한국사 편지 #5. 발해의 멸망과 고려의 건국

'나만의 한국사 편지 #5' 뉴스레터 선공개

고구려 부흥 운동으로 발해가 세워졌다. 그런데 우리는 발해 역사 속 인물들을 얼마나 알고 있나. 대조영 이후 누가 있었는지 잘 모른다. 대조영의 아들 발해 무왕이 있었다. 그는 바다 건너 당나라 산둥반도의 등주를 공격했다. 9세기 발해는 '해동성국'이라 불릴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발해도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국가 거란[요]에 의해 926년 멸망했다. 워낙 급작스러운 멸망이라 기록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발해의 멸망은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


<요사>에 따르면 발해 멸망은 발해 마지막 왕 대인선이 항복한 926년 1월 14일로 본다. 하지만 고려, 조선의 많은 기록이 발해 멸망을 ()


고구려, 발해, 후고구려 모두 '고려'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려'란 나라 이름을 쓴 것이 왕건의 '고려'가 처음일까. 아니다.


첫 번째, 4~5세기, 고구려를 고려로 불렀다?

()

두 번째, '발해'도 '고려'란 나라 이름을 사용했다.

()

세 번째, 궁예가 세운 나라 이름도 '(후)고려'였다.

'후고구려 아니야?'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


* 내일 발행되는 '나만의 한국사 편지'에서는 발해 멸망 연대를 중국 기록 기준으로 볼 때와 우리 기록 기준으로 볼 때 어떻게 그 의미가 달라지는지 이야기하며, 왕건의 '고려' 이전에 고구려, 발해, 궁예의 고려에서 '고려'라는 나라 이름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살펴봅니다.*


전문은 '나만의 한국사 편지' 뉴스레터를 통해 4/13 발송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위 글의 전문을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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