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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의한국사 Sep 13. 2021

의자왕과 삼천 궁녀의 진실

[선공개] 나만의 한국사 편지 #15. 백제의 멸망과 후백제의 건국

우리가 아는 백제의 멸망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로 시작하는 전 국민이 아는 동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있다. 처음부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삼천궁녀 의자왕 / 황산벌의 계백 맞서 싸운 관창'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대다수 사람들은 백제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할 것 같다. 


(…)


'삼천궁녀 의자왕', 진실 혹은 거짓 

우리는 의자왕하면 삼천궁녀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의자왕이 술과 여자에 빠져 궁녀가 3천이나 되었고 사비성이 함락되는 날 3천 명의 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던져 낙화암(落花巖)이란 바위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 


(…)


그러나 ‘의자왕과 삼천궁녀’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


백제가 멸망한 진짜 이유?


(…)


나는 백제 멸망의 결정적인 요인이 내부보다 외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백제는 신라와 싸울 때 항상 자신감에 차 있었다. 설마 당나라가 신라와 함께 백제를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따라서 한 나라를 평가할 때는 멸망의 시간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나라가 건국부터 멸망까지 어떤 일을 해냈느냐가 더 중요하다.


(…)


다시 건국된 백제


백제 멸망 후 230여 년이 흐른 뒤 백제는 부활했다. (…)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옛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 익산과 가까운 완산주[전주]로 도읍을 옮기고 ‘바르게 연다’라는 뜻이 담긴 정개(正開)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백제 무왕이 세운 익산 미륵사에서 ‘개탑(開塔)’ 의식을 진행하면서 통일의 의지를 다지며 새로운 미륵의 나라를 열고자[開] 하였다. 견훤은 백제 미륵사의 쌍석탑을 계승해 강진 월남사에 쌍석탑을 세우기도 했다. 


(…)


다시 쓰는 나라 이름의 시작


견훤이 새 나라 이름을 ‘백제’로 지은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


글. 역사학자 조경철

편집. 집배원 부


* 백제의 마지막을 '삼천궁녀 의자왕'이라고만 기억하시나요? 내일 발행되는 '나만의 한국사 편지'에서는 백제 멸망의 외부적 요인을 살펴보고, 멸망의 순간만으로 한 나라를 평가하기보다는 백제가 건국부터 멸망까지 어떤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 좀 더 주목해 봅니다. 또한 견훤의 (후)백제로 부활한 나라 이름 백제가 역사 속 국호계승의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봅니다.*


전문은 '나만의 한국사 편지' 뉴스레터를 통해 9/14 발송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위 글의 전문을 이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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