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공개] 나만의 한국사 편지 #15. 백제의 멸망과 후백제의 건국
우리가 아는 백제의 멸망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로 시작하는 전 국민이 아는 동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 있다. 처음부터 노래를 부르다 보면 '삼천궁녀 의자왕 / 황산벌의 계백 맞서 싸운 관창'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대다수 사람들은 백제의 마지막을 이렇게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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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궁녀 의자왕', 진실 혹은 거짓
우리는 의자왕하면 삼천궁녀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의자왕이 술과 여자에 빠져 궁녀가 3천이나 되었고 사비성이 함락되는 날 3천 명의 궁녀가 백마강에 몸을 던져 낙화암(落花巖)이란 바위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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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자왕과 삼천궁녀’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
백제가 멸망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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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제 멸망의 결정적인 요인이 내부보다 외부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백제는 신라와 싸울 때 항상 자신감에 차 있었다. 설마 당나라가 신라와 함께 백제를 공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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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한 나라를 평가할 때는 멸망의 시간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나라가 건국부터 멸망까지 어떤 일을 해냈느냐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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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국된 백제
백제 멸망 후 230여 년이 흐른 뒤 백제는 부활했다. (…)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옛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 익산과 가까운 완산주[전주]로 도읍을 옮기고 ‘바르게 연다’라는 뜻이 담긴 정개(正開)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백제 무왕이 세운 익산 미륵사에서 ‘개탑(開塔)’ 의식을 진행하면서 통일의 의지를 다지며 새로운 미륵의 나라를 열고자[開] 하였다. 견훤은 백제 미륵사의 쌍석탑을 계승해 강진 월남사에 쌍석탑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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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나라 이름의 시작
견훤이 새 나라 이름을 ‘백제’로 지은 것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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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역사학자 조경철
편집. 집배원 부
* 백제의 마지막을 '삼천궁녀 의자왕'이라고만 기억하시나요? 내일 발행되는 '나만의 한국사 편지'에서는 백제 멸망의 외부적 요인을 살펴보고, 멸망의 순간만으로 한 나라를 평가하기보다는 백제가 건국부터 멸망까지 어떤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 좀 더 주목해 봅니다. 또한 견훤의 (후)백제로 부활한 나라 이름 백제가 역사 속 국호계승의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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