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오타마 철학의 핵심은 '무아(無我)'이다.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내가 없다'라는 뜻이다. 이러한 '내가 없다'는 것이 이 공부를 시작하자마나 만나게 되는 거대한 장벽인데, 이 지점을 지나기 위해서는 정면돌파보다는 우회로를 추천한다. 다시 말해 '무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보다 왜 '내가 없다'라는 주장이 펼쳐졌을까 하는 쪽으로 접근하는 편이 더 낫다는 의미다.
고오타마가 '무아'를 주장한 의도는 '나' 자체를 부정했다기보다는 괴로움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나의 부작용'에 방점이 찍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부작용의 사전적 정의인 '어떤 일에 부수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나'는 본래 생각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기능일 뿐인데, 그 기능의 과잉으로 인하여 괴로움을 겪는 것이 '나의 부작용'이다.
'무아'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무아'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이 공부의 방향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무아'를 한자 뜻 그대로 '내가 없다'로 해석할 경우, '기능적으로 작용하는 나'까지 부정해 버리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다시 말해 '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사실관계에 천착하여, '나' 없음으로 결론 내리고 사고기능 자체를 '착각'으로 간주하여 부정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능적으로 작용하는 나'는 사고기능의 구심점으로 가치중립적이다. 그리고 사고기능은 호모사피엔스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을 위해 고도화된 진화 과정의 산물일 뿐이다. 다만 이 기능의 과잉으로 그저 구심점일 뿐인 '나'가 실체로 착각되어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당하게 된 것이다. 즉, 사고기능의 부작용이 문제인 것이지, 사고기능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무아'에 대한 '맹목적 나 없음' 식 접근의 가장 큰 부작용은 빈대(착각의 나) 잡으려다 초가삼간(기능의 나) 태운다는 것이다. 생각은 비교, 대조, 예측, 추론, 상상 등을 하는 기능일 뿐이다. 이러한 기능의 쓰임으로 문명이 발달했고, 생존과 의식주 해결이 다른 종에 비해 훨씬 유리해졌다. '나, 생각, 사고기능' 자체를 '착각'으로 퉁쳐 버리기엔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증류수'는 순도 100%의 물로 인체에 이로울 것 같지만, 지속적으로 음용할 경우 신진대사에 해롭다. 물이 몸에 이롭기 위해서는 신진대사를 위한 필수 성분인 칼슘, 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함유되어야 한다. 즉, '무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향은 물에 포함되어 있는 해로운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이지, 필수 성분인 미네랄까지 제거하여 증류수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無所有)'에 대한 해석 또한 마찬가지다. 한자 뜻 그대로 '가진 것이 없다'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편이 낫다. 무아, 무소유 등 단어의 뜻 자체에 지나치게 천착하기 보다 그것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닌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야 달을 볼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