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심(生死心)'은 국어사전에는 없는 불교 용어로 '죽고 싶지 않고 살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해석될 수 있다.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그게 무슨 문제인데?'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들여다보면 죽고 싶어 하든 죽고 싶지 않아 하든 그런 의도와는 무관하게 저절로 살아지게 되고,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삶'과 '죽음'이란 개념도 저절로 일어나는 연기적 현상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흔히 생명 작용을 엔트로피를 역행하는 현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유기체가 스스로의 개체성을 질서 있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유지하려는 작용이다. 인간의 사고기능은 생명력을 강화하기 위해 진화적으로 발현된 기능이며, 실제로 그 기능 덕분에 생태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훌륭한 기능의 과잉으로 인한 부작용으로 '괴로움'을 겪게 되었다.
과잉하다는 것은 저절로 흐르는 생명력, 다시 말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저절로 부산에 도착하는 열차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망각하고 부산에 가기 위해 안간힘 쓰며 발버둥을 친다는 것이다. 사고기능은 언어를 매개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생존의 확률을 높였고, 실제로 성공했다. 다만 그 부작용으로 인간은 죽지 않고 천년만년 살고, 전지전능 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이런 과잉된 욕망을 '집착(執着)'이라고 하고 '괴로움(苦)'의 원인으로 본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 괴로움과 거기서 파생된 오음성고(五陰盛苦, 색수상행식 오온에 집착해서 생기는 괴로움), 구부득고(求不得苦,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 원증회고(怨憎會苦, 싫은 것을 마주해야 하는 괴로움),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 네 가지 괴로움이 있다.
'생사심(生死心)'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생명력에 자꾸만 태클을 건다. 긁어 부스럼을 만든다. 생사심의 태생 자체는 인간 개체가 사회화 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기제로 형성되었지만, 주객이 전도되어 기능에 불과한 것을 주인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다행히 메타인지의 발현으로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전모가 밝혀진다.
깨어나는 희유한 인연에도 불구하고 깨어남 전후의 인과는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는다. 내 경우 깨어나고 보니 누군가의 자식, 남편, 부모, 친구, 회사원 등의 배역을 맡고 있었다. 또한 민감하고 예민한 감각질, 과도한 건강염려, 완벽주의, 루틴강박, 의무감, 책임감 등 아주 버라이어티 한 멍에를 쓰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러한 묵직한 멍에가 깨어남의 중요한 인과로 작용했을 것이다.
깨어남은 부처도 갈 수 없는 오직 모를 뿐인 그곳을 알게 되는 단 하나의 방향으로 귀결된다. 이후의 여정은 그렇게 깨닫게 된 실상의 관점으로 현상을 살게 되는 것이다. 실상은 현상의 여부와 무관하게 완벽하다. 그러한 실상의 비춤인 현상 또한 불완전하다는 생각의 시비와는 무관하게 완벽하다. 생각만이 이러쿵저러쿵 궁시렁 거릴 뿐, 완벽하게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깨달음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이다. 사고(四苦), 팔고(八苦)의 근간인 생사심(生死心)의 연기적인 발현이 제거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생사심의 발현을 메타인지의 관조적 알아차림을 통해 무관해지는 뇌 신경망이 강화되는 것이다. 핸들이 거꾸로 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데스틴처럼 8개월이 소요될 수도 있고, 쑥과 마늘만 먹어서 곰에서 사람이 된 웅녀처럼 100일이 걸릴 수도 있다. 케바케다.
흔히, 운동이나 예술의 영역에서 고수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10년의 법칙,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그것도 영혼 없는 1만 시간이 아니라 제대로 된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조작과 추구를 통한 자기계발적 노력을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새로운 신경망의 배선과 그것이 기존의 묵직한 멍에 같은 무의식을 대체하고 무관해지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의미다.
생사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자동으로 염려기전이 작동할 것이고,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신경이 쓰이게 될 것이고, 온갖 사건들에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 자연스럽게 작용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온갖 생사심들의 거친 패턴부터 미세한 패턴까지 날카롭게 알아차려지게 됨으로써 놓이고 물러나지는 무관해짐 신경망이 강화되어 갈 것이다. 공짜는 없다. 잘 당하는 딱 그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