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이야기나 쓰자고 생각했다.
때는 작년, 세 번째 장편소설로 작은 작가상을 받았을 때였다.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고, 작가로서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때가 있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물론 부모님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또 꿇니?”
“이번엔 뭔데?”
“보나 마나 돈이죠. 여보, 뭘 물어봐요. 하루이틀이에요?”
“아니에요, 어머니, 아버지. 이번에는 돈이 아니라 저의 예술가로서의 커리어와 관련된 문제예요. 진지하게 예술가로서의 저를 후원해 달라는 거죠.”
“돈 얘기가 맞네.”
“물어볼 필요 없다고 했잖아요.”
“엄마. 그냥 돈 얘기가 아니라 후원이라니까요, 후원.”
나는 공손하게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작가로서 저의 재능은 이제부터 무섭게 개화할 것 같아요. 이런 타이밍에 돈벌이를 하느라 재능을 발휘할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당분간 작가로서 집필에만 매진하려고요.”
“여보, 요즘 사과 한 알에 얼마지?”
“못 해도 2천원은 줘야 하죠.”
“딸아, 네가 올 해 작가로서 번 돈으로 사과를 몇 알이나 살 수 있니?”
“아버지, 돈 얘기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말씀드렸잖아요.”
“그래서 몇 알?”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역시 같은 권리를 행사하는 듯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윽고 아버지는
”그래. 무엇을 하든 우린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 집이 예술가를 후원할 정도는 못 되는구나. 이해하렴.”
“아, 아빠!”
“그래. 딸에게 아빠가 용돈을 가끔 줄 수는 있다.”
“그럼. 자기 밥벌이를 걷어찬 예술가에게 후원은 못 해주겠지만, 백수가 되겠다는 딸내미한테 밥은 차려줄 수 있지. 그 이상은 바라지 마. 알았지?”
나는 바닥을 쿵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고 봐요. 내가 꼭 작가로 성공해서 사과 백 알, 아니, 천 알은 사 줄 테니까!”
“연봉 200만 원을 벌어오겠다는 거구나. 아주 멋진 포부다.”
“진짜!”
“어디 가니? 설마 집 말고 카페 가서 글 쓰려고? 커피값은 어떻게 내려고?”
“도서관 가요!”
나는 문을 거칠게 연 뒤,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하지만 마음을 독하게 먹은 덕분인지, 정말로 이듬해에 원고 요청이 쏟아졌다. 연봉이야 직장을 다니던 때의 절반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명절에 당당하게 사과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사과 상자를 내려다보며 잠시 말을 멎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개수를 헤아렸다.
“10개 구나. 이게 작가로서 너의 최선이었니?”
“대신 비싼 사과거든요!”
그리고 드디어 한 권의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통장에 찍힌 액수의 동그라미 수가 달라졌다. 아버지도 이번만큼은 놀리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어깨를 토닥였다.
“잘했다. 고생 많았겠구나.”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작가님. 잘 계시죠?”
“그럼요. 백현 씨도 잘 계시죠?”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담당자에게 온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그는 외모도 수려한 데다 말솜씨도 좋은 호감형이었다. 그래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가 원하는 대로 전부 소설을 수정하고 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그 덕분이었을 수 있다. 그 덕분에 풍요로워진 내 계좌를 생각하며 나는 부드럽게 물었다.
“어쩐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작업실 하나 계약하실 생각 없으세요?”
“작업실요?”
그때까지도 작업실이 아닌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던 나였기에, 나는 귀를 쫑긋했다.
“좋은 데가 있어요?”
“네. 우리 출판사에서 사무실로 사용하던 곳인데, 작가님들이 작업실로 사용하기에 딱 좋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분도 아닌 우리 출판사를 살려주신 베스트셀러 작가님께 먼저 전화했어요.”
“어딘데요?”
“지금 오실 거죠? 주소 찍어 드릴게요.”
작업실. 나만의 공간.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 마법 같은 단어에 나는 당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어떠세요?”
나는 사무실 곳곳을 꼼꼼히 살펴보며 황홀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완벽해요. 제가 꿈꾸던 완벽한 작업실이에요.”
“그렇죠? 원래 사무실로 쓰던 곳이라서 입지도 너무 좋아요. 여기서 작업도 하시고, 마감을 다 하신 후 파티 열 때, 손님 초대하기에도 좋아요. 교통이 얼마나 편리하다고요.”
“하지만…”
나는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백현이 그 마음을 잘 안다는 듯 내 쪽으로 한 발짝 다가와 귓속말하듯 속삭였다. 어차피 우리밖에 없는 곳이었는데도.
“생각해 보세요. 이제 작가님의 손은 마이더스의 손 같은 거예요.”
“마이더스의 손이요? 제 손이요?”
“그럼요. 작가님의 손가락이 움직이기만 해도 돈이 만들어진다고요. 작가님은 여기에서 글만 쓰시면 되는 거예요. 몇 개 작품만 지금처럼 터지기만 하면 작업실 계약금 같은 건 금방 갚으실 수 있어요.”
결국 그 말에 넘어가 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거기에 그 출판사와 몇 건의 장편 소설을 계약했다. 그런데도 계약금이 모자라 다른 출판사와도 출판 계약을 맺었다.
1년 후, 나는 작업실이 아닌 동료 작가 해령의 집에 숨었다. 해령이 한심해하며 사과를 깎아줬다.
“아니, 언제까지 내 집에 숨어 있을 거야? 너랑 나랑 친한 거 아니까 백현 씨고, 주원 씨고 다 나한테 한 번씩 전화해. 너 어디에 있는지 아냐고.”
“그때마다 말 잘했지? 나 없다고.”
“당연하지. 그래도 시간문제야. 그냥 마감해!”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의뢰를 너무 많이 받아서 마감을 지킬 수가 없어서 그러지.”
“바보. 그러지 말고, 내가 잘 아는 절이 있거든? 거기는 아무도 몰라서 누가 널 찾을 수가 없을 거야.”
아무도 찾을 수 없다는 말에 나는 해령을 따라나섰다. 물론 한 가지를 묻는 것은 잊지 않았다.
“거기 인터넷은 돼?”
“당연하지.”
해령의 차를 타고 길이 굽이굽이 나 있는 산길을 지났다. 정말 외진 곳인 듯 나무만이 빽빽했다. 나는 한 번 더 해령에게 물었다.
“거기 인터넷이랑 전기 되는 거 맞지? 나 스팀에서 게임 받은 거 해야 해.”
“나만 믿어.”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절이 아니었다. 수목원에서 운영하는 펜션 앞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출판사 담당자와 대표들이 줄을 서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 해령아.”
“미안. 너 납치 당한 거야.”
“해령아!”
“그러니까 우리 집에 너무 오래 있었잖아. 나도 힘들었다고. 여기서 통조림 당하면서 작업을 다 하고 나면 여기 선생님들이 풀어주실 거야. 꼭 마감해? 화이팅!”
“안 돼!”
해령은 떠나버렸고, 나는 담당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백현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작업실을 찾아 드리면 거기에서 글을 열심히 쓰실 줄 알았죠. 하지만 작업실을 계약한 후 작가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장편소설을 무려 3개나 계약하시고는, 1년 동안 겨우 5천 자를 쓰신 게 전부이죠. 저희 담당자들은 작가님의 이런 행태를 두고 보지 않기로 했어요.”
“하지만 절대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작가님을 조금도 해칠 생각이 없으니까요.”
“맞아요. 오히려 안전하게 지켜드릴 거예요. 오직 집필에만 매진하실 수 있게요.” 눈물이 절로 흘렀다. 백현이 눈물을 닦아 주었고, 주원이 물을 건네주었다. 나는 무심코 말했다.
“챙겨주는 거예요? 고마워요.”
“그럼요. 울지 마세요, 작가님. 울면 눈앞이 뿌예져서 화면이 안 보이니까요.”
“그리고 물은 조금만 드세요, 작가님. 많이 드시면 화장실 자주 가고 싶어져서 시간이 낭비되니까요.”
“안 돼, 안 돼. 저 돌아갈래요. 저 그냥 마감 안 할래요. 제발 돌려보내 주세요.”
“저런. 안 돼요. 작가님. 받으신 돈 전부 이미 작업실 구하는 데 쓰셨잖아요.”
“그러면 적어도 작업실에서라도 작업할래요.”
“그러기에는 이미 충분한 시간을 드렸어요. 이제는 안 돼요. 작가님은 여기서 계속 머무시는 거예요. 마감이 끝날 때까지.”
“마감이 끝날 때까지.”
백현의 마지막 말이 다른 담당자들이 따라서 말했다. 마치 사이비 종교 집단의 기도문 읊는 것 같아 오싹했다. 그들이 나에게 점점 다가왔다. 나는 두려움에 한 걸음씩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나를 끝내 펜션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지막까지 그들은 내게 붉은 눈으로 그 말을 읊었다.
“마감이 끝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