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12월은수시의 계절이다. 12월 초 수능성적표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미리 지원해 둔 6개 대학의 합격발표레이스가 펼쳐진다. 최저통과여부에 따라 수능당일 몇 개의 대학은 벌써 물 건너갔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면접이나 논술 등의 기회를 얻었을 터. 수시=깜깜이전형이라는 특성 때문인지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요맘때는 정시의 계절이다. 아직까지 입시가 진행중이라는 것은 이미 6개 수시불합격의 쓴맛을 보고 정시결과를 기다린다는 의미이다.가나다 군별로 3개의 학교에 지원을 하면 무려 한달여간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0.00X 점수차이로 합불이 갈리니 그야말로 총성없는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는 셈. 엄마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대학별 합격발표가 시작되면 혼돈의 카오스다. 예비번호를 받고 회차가 거듭될수록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작이다. 더디게 줄어드는 예비번호를 바라보며 이때만큼은 이타심의 끝판왕이 되어 우리 아이 앞에 있는 친구들이 더 좋은 대학으로 옮겨가기를 오매불망 빌어도 보고 기적이 생기기를 간절히 바래도 본다.
사연없는 대입은 없다고 했던가. 소위 정시파와 수시파가 골고루 포진된 우리 집도 예비 1번의 장벽에 부딪혀 불합의 고배를 마셔보기도 했고 발표마지막날 마지막 추합전화로 합격의 기쁨도 맛보았다.
입시를 끝낸 지금 후련한 마음속에도 이맘때쯤 매번 떠오르는 건 첫 수능을 끝낸 첫아이와의 첫 통화음성이다. 정시파였던 아이는 고3 내내 다행히 안정된 모의고사점수가 나와주었기에 최저높은 논술에 정시만을 바라보고 있던 상황. 첫 수능을 맞이한 철없는 엄마는 수능당일날도 맘 편히 하루를 보냈더랬다. 수능이 끝날 때쯤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갔고 나는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내 핸드폰이 울렸다. 반가운 마음에 통화버튼을 누르고 "♡♡아 시험 끝났어?"라고 물었는데 대답없이 이어지는 적막. 떨림만이 느껴진 건 불과 2,3초나 되었을까? 시간이 멈춘 듯, 아 뭐가 잘못되었구나가 온몸으로 느껴졌고 그렇게 우리의 현역생활은 마무리되었다. 그 서늘했던 통화는 내 뇌리 속 너무나 깊숙이 박혀 있어 비슷한 공기의 감촉만 느껴져도 불쑥불쑥 생생히 떠오르는 차디찬 기억조각으로 남아있다.
당시 나는 아이의 아픔보다 내 상처가 더 크게 보여 아이를 온전히 안아주지 못했던 못난 엄마였고. 아이의 수능실패가 내 인생의 패배로 느껴져 늪속으로 가라앉느라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지 못한 무력한 엄마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이 끝나고서야 다시 세상에 나올 수있었고 그제야 아이를 안아줄 수 있었다.나의 미안하다는 진심이 아이에게 온전히 전해져 닿았을지는 모를 일이다.
수능이 끝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수능이란 결과가 아닌 그저 하나의 과정이었음을 깨닫는다. 확고한 꿈이 있었던 아이들은 이제 저마다의 꿈을 안고 저마다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 그 꿈을 믿어주고 지지하는 것만이 부모인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전부다. 이제 부모가 할 일은 그들과 같은 길이 아닌 평행길을 걷는 일.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고 고개를 돌리면 바라볼 수 있고 손내밀면 잡아줄 수 있도록 나란히 같이 걷는 일이다.
하여 내 길을 찾아보려 한다. 늘 아이들과 같은 길을 걸으며 아이들을 놓칠세라 동동거렸던 발걸음을 한 발자국씩 옆으로 내딛으려 한다. 나의 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순 없지만 가봐야 알 수 있을것이고 가보면 알게 되겠지. 두려워하진 않을 것이다. 나에게도 손내밀면 언제든 잡아줄 동반자들이 곁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