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없더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

내 집밥의 키워드는 불사신

by 마이라떼

알람을 맞추고 기다린다. 한눈팔 사이는 없다. 오직 집중 또 집중. 띠리리 띠리리 알람이 울리면 가차없이 불을 끄고 면을 건져낸다. 무슨 면이냐고? 그것은 바로바로 다름아닌 평범한 스파게티면이 되시겠다.


다시 또 알람. 마늘을 볶고 매콤함을 가미해 줄 페퍼론치노에 고사리까지 시간차 공격이 따로 없다. 면까지 합체할 동안 끊임없이 울리는 나의 핸드폰. 고작 오일파스타에서 약간 변형된 고사리알리오올리오를 만들었을 뿐인데 에베레스트 등정만큼이나 힘이 든다.


스파게티 면 삶는데 무슨 알람이냐구? 그렇다. 나는 요알못, 요리엔 참으로 소질이 없다. 적당히와 눈대중이란 나에겐 아랍어만큼이나 해독불가능한 단어. 다행히 요즘엔 숟가락 계량법이 보편화되어 한숨 덜었지만 여전히 저울과 비커, 시계는 필수템이다.




나의 친정엄마는 요리솜씨가 정말 좋으셨다. 엄마집밥의 키워드는 정성. 아이가 태어나면서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세계로 들어선 엄마는 자식들을 먹일 음식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셨다. 두부와 호박 된장만으로도 세상 맛있는 된장찌개가 완성되었는데 어떤 음식이건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들여 만드니 맛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엄마음식의 화룡점정은 도시락. 특히 고3 때는 학교야간자율학습을 꼭 해야 했는데 엄마는 코끼리표 보온도시락에 따뜻한 새 밥을 지어 매일매일 저녁시간에 맞춰 배달해 주셨다. 어떤 날은 김을 어떤 날은 채쳐서 볶은 당근을 또 다른 날은 시금치를 넣어 만든 알록달록 엄마표 계란말이에 불고기, 제육볶음, 쏘세지볶음까지 매번 다른 반찬으로 정성스럽게 싸주신 도시락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집밥하면 시어머니를 빼놓을 순 없지. 시댁집밥의 키워드는 건강과 간편함이다. 결혼을 하면서 1년동안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시댁밥상에 올라오는 반찬들은 거의 모두 자연그대로의 원재료들이었다. 오이, 당근, 양파, 양배추, 고추, 셀러리 등등 모든 야채들이 날것 그대로 식탁을 채웠고 간을 거의 하지 않은 음식들에 처음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루는 어머님의 매우 독창적인 실험정신에 입각한 오이된장찌개가 탄생한 적이 있었는데 다행히 이븐하게 익지 못함으로 다시는 밥상에 올라오지 못했다. 그래도 간편한 요리를 추구하시던 어머님덕에 나의 요리살이는 살만한 것이었겠지.


엄마집밥과 어머님 집밥의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음식은 잡채였다. 친정의 잡채는 잔치음식인 반면 시댁의 잡채는 비비고에 버금가는 간편식. 엄마는 하루 날을 잡아 잡채를 만드셨는데 당근, 양파, 시금치, 버섯(표고버섯과 목이버섯, 팽이버섯까지), 고기 등 모든 재료를 손질하고 각각 밑간을 한 다음 따로 볶아 당면과 같이 온갖 양념으로 조물조물, 고명으로 흰색 노른색 계란지단까지 얹어서야 완성되는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반면 어머님은 "우리 저녁에 간단하게 잡채나 먹을까"라는 놀라운 멘트를 시작으로 30분만에 모든 재료를 채썰어 함께 볶은 후 미리 불려놓은 당면과 함께 버무려 완성되는 초스피드음식. 그렇다고 맛이 그리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나도 서서히 시댁 입맛에 길들여져 엄마가 서운함을 시전하기에 이르렀다.


먹기만 하면 됐던 딸로서 우리 엄마를, 보조지만 요리의 세계로 들어서야 했던 며느리로서 시어머니를 만난 건 참으로 행운이었으리라. 그래도 가끔은 만일 뒤바뀐 삶이었다면 나의 요리실력은 지금보단 나아지진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곤 한다.




다시 나의 집밥으로 돌아와 보자. 밑반찬과 젓가락이 필요없는 한그릇음식을 필두로 하야 눈부시게 발달한 각종 냉동식품과 밀키트, 배달음식은 나의 주종목이다. 가끔 요리사에 빙의하여 치르는 산전수전 공중전에 맞먹는 요리혈투에는 각종 요리에센스(조미료절대아님)와 시판소스, 고향의 맛 다시다까지 곳곳에 최정예 전투요원들이 배치된다. 그나마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이 들지만 맛없는 음식 안 먹는 거 보단 맛있는 음식 행복하게 먹는 게 낫다는 나만의 궤변으로 위안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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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 할아버지의 "고향의 맛"이나 "김영철의 동네한바퀴"같은 TV프로그램을 보면 종종 한 마을이나 한 집안에 대대손손 전해내려오는 손맛이 방송된다. 보통은 돌아가신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께 전수받아 명맥을 유지하기 마련인데,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멘트가 있으니 예전 그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료도 양념도 똑같이 그대로 보고 배운 대로 하고 있지만 그때 먹던 맛이 아니라 추억 속 그 맛을 그리워하고 다신 맛볼 수 없다는 사실에 한탄스러워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나의 곁에 계심으로 다행인 두 어머님이지만 그 옛날의 집밥은 이제 맛볼 수가 없다. 그저 기억으로 남아 나를 위로해 줄 뿐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거였구나 내 집밥의 의미가. 내가 죽고 없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엄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더냐. 결국 내 집밥은 불사신인 것이다. 나는 다 생각이 있었구나. 시어머니의 손맛은 며느리에게도 비밀이라지만 나는 친정엄마니 딸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해 주련다.


엄마의 찌개가 먹고 싶을 땐 다담소스를

고등어무조림과 찜닭이 생각난다면 샘표소스를

김치찌개는 우리집앞 장꼬방으로

쭈꾸미볶음과 곱창전골은 샛별배송으로

제육과 불고기는 코스트코로


그래도 딸들. 이것만은 알아줘.
엄마의 초라한 집밥에도 사랑만큼은 꽉꽉 들어차있다는 걸.
늘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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