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앞에 작은 상자가 놓여있다. 누가 보낸걸까? 아무리 찾아봐도 알수가 없다. 아이의 이름만 단정히 써있을 뿐 깨끗하고 흠하나없는 반듯한 박스다, 아이는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본다. 너무나 예쁜 분홍풍선 한개. 아이의 눈은 동그래지고 마음이 콩닥콩닥 부풀어 오른다. 이건 내거야. 나 혼자만의 것.
아이는 소중하게 풍선을 바라본다. 먼지한톨없고 구김하나없어 혹 모양이 흐트러질까 손가락하나 대보기도 영 쉽지가 않다. 이 풍선을 불면 어떤 모양이 될까? 귀여운 토끼모양도 그려보고 금새 터질듯한 두근두근 하트모양도 떠올려본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풍선을 만들어야지. 아이는 두손 꼭잡고 마음깊이 다짐해본다.
풍선을 꺼내 손위에 올려놔본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것과 나의 살결이 닿는건 이 행성에서 저 행성사이만큼이나 천지차이다. 눈을 감은채 조심스레 입에 물고 한입 여린 숨결을 불러넣어보는 아이. 풍선은 부풀어오를듯 오르지않아 애간장을 태운다.
첫 며칠간은 풍선을 손에서 놓을수가 없다. 너무나 귀해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풍선을 부는일은 그 누구도 대신해줄수 없는 나만의 일이기에 아이의 모든 순간이 풍선과 함께이다. 양볼이 빨개질만큼 불기를 여러번, 한번 부푼 풍선은 날마다 쑥쑥 커져 동그란 풍선으로 모양을 제법 갖췄다. 아이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물들어간다.
풍선을 잠깐 손에서 놓아본다. 아직 날지 못하니 다행이라 여기며 그제서야 보이는 주변의 모습에 눈길을 돌려본다. 이제 아이는 바깥세상이 궁금해졌고 나의 풍선을 가느다란 실에 짧게 매달아 손목에 묶고 어디든 데리고 다닌다. 아무리보아도 내 풍선이 제일 예쁘고 특별하다.
너무 짧게 맨 풍선은 자꾸 어딘가에 부딪혀 불편해보이고 답답할것만 같다. 조금만 더 멀리 날려볼까? 용기를 내어 실을 늘려본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살랑살랑 떠다니는 모습을 보는 아이의 표정이 시원섭섭하다.
핀터레스트풍선을 부는 일은 매일매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고 요령이 생겨 예전처럼 터질까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다. 더 이상 불면 터질듯이 빵빵해진 풍선. 이제 불기를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보니 특별함은 사라지고 다른 여느 풍선과 별반 다를바가 없어 보인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거추장스러워 풍선을 집에 두고 나가는 날도 점점 늘어난다.
어느날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형형색색의 풍선들이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보니 나의 풍선이 방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아이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풍선은 변한게 없었는데 내마음이 변했던 거였다는걸.
저 풍선이 나에게로 온것은 그저 우연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운명이었을 텐데, 우리 누구의 의지도 아니었을텐데 나는 왜 풍선을 내것이라 여겼을까. 풍선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본적이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나는 풍선의 자랑거리였던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본다.
아이는 풍선을 꼭 안고 집밖으로 나간다. 한참을 바라보다 마침내 속삭인다. 우린 헤어지는게 아냐. 니안에 내숨결이 들어있고 내안엔 너의 시간들이 들어있단다. 우린 어디에 있어도 서로를 알아보고 기억해낼수 있어.
잘가렴, 나의 풍선아.
풍선을 안은 두 손을 펼치니 풍선이 두둥실 떠올라 하늘높이 날아간다. 보아왔던 모습중 가장 자유롭고 아름답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때 아이도 떠오른다. 마침내 풍선과 마주서게된 아이. 서로를 연결하는 끈은 없지만 각자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서로를 위한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아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핀터레스트
사랑하는 딸들에게.
언젠가 엄마품을 떠나 너희의 길을 가야할때 마음껏 자유롭고 힘껏 설렐수 있도록 엄마도 엄마의 자리에서 즐겁게 살테니 걱정하지 마렴.
엄마의 딸들로 와줘서 고마워.
2025년 새해에도 우리 서로 행복하자.
누군가에겐 더없이 소중하고 가장 어여쁜 풍선들이었을 희생자 모든 분들을 가슴깊이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