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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Jul 05. 2023

이건 요리가 아니다. 전쟁이다

이 상처는 영광의 상처

난 정말 요리를 못한다.


어렸을 땐 결혼하고 주부가 되면 자연스럽게 요리 실력이 늘 것이라 생각했다. 사 남매를 키우며 순식간에 아침, 점심, 저녁을 만들어 내는 엄마를 보면서 자랐기에, 주부라면 엄마라면 당연히 저렇게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도 나의 요리실력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요리도 재능인가 봐.
어떻게 이렇게 1도 늘지 않을 수가 있지? 


맛없는 요리는 그렇다 치자. 더 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주방에 들어가면 꼭 피를 본다는 것. 급한 성격 탓에 칼질은 잘하지도 못하면서 허둥지둥 대다 손가락을 베이는 일이 잦았다. 칼을 들고 주방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은 전쟁터에 있는 군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주부에겐 칼이 곧 무기가 아닌가. 이 요리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능수능란하게 이 무기를 잘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채 썰기는 왜 그리도 익숙해지지 않는 건지. 그러다가 어느 날 큰 사달이 났다.


그 당시 일본식 돈가스에 나오던 얇은 양배추 샐러드에 푹 빠졌던 나는 이걸 어떻게든 집에서 먹고 싶어 안달이었다. 반대편이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얇은 양배추 샐러드. 거기에 참깨드레싱을 뿌려 먹는 게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런 양배추 샐러드를 매일 먹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까 업소에서는 채 썰어 주는 기계를 쓴다고 했다. 하지만 샐러드 먹겠다고 기계를 살 수 없는 노릇. 좀 더 알아보니 모 브랜드의 채칼을 쓰면 엇비슷하게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을 수 없다. 당장 채칼을 주문했다. 


배송된 채칼을 깨끗이 씻고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양배추를 썰기 시작했다. 쓱 쓱~ 썰려져 나온 채칼을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역시 문제는 도구였어. 육아도 살림도 장비빨이구나. 이렇게 잘 썰리는 채칼을 왜 이제야 안 걸까. 이젠 매일매일 양배추 샐러드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을 생각에 신나게 양배추를 썰던 그때.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양배추만 썰린 게 아니라 엄지손가락 끝이 채칼에 썰리고 만 거다. 그것도 아주 크게. 손 끝에서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외마디 비명소리에 놀란 남편이 달려왔다. 피가 멈추지 않는다. 콸콸콸. 하얀 양배추는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버렸다. 그리고 난 양배추 사이에 떨어져 있는 그것... 을 보고 말았다. 


울면서 응급실로 달려갔다. 세척과 소독을 마친 후 나의 손 끝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다행히 단단한 손톱이 더 큰 부상을 막아 준 듯했다. 응급실에 가지고 갔던 그것은 봉합하기엔 상태가 좋지 않았고 크기도 크지 않아 봉합과정이 더 아플 것이니 살이 차오르는 것을 기다리자고 했다. 움푹 파인 손끝살이 다시 천천히 차오를 것이라는 소리에 살짝 안도했지만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양배추 때문에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람. 그냥 베인 것도 아니고 살점을 날려버리다니. 붕대가 칭칭 감긴 엄지 손가락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나 둥둥 붕대를 감았지만 어딘가에 스치기만 해도 그 고통이 오롯이 전달되어 왔다. 정상적인 손 끝으로 돌아오기까지 몇 달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후 우리 집에서 채칼이란 존재는 사라졌다. 말 그대로 전쟁을 치른 것이나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주방에서 칼질을 할 때마다 한층 긴장이 된다. 아직도 칼질은 서툴고 피를 보는 일이 끊이지 않는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그때의 부상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


언젠가 요리라는 전쟁에서 승전보를 울리는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나는 칼을 들고 부엌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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