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라떼 Jul 06. 2023

직업이 뭐예요? 주부입니다만...

결혼하고 주부가 된 후 가장 고민스러울 때가 바로, 회원가입이나 설문조사에서 직장에 관한 질문이 나왔을 때다. 


귀하의 현재 직업은 무엇입니까?

대학생 때까지는 당당하게 학생에 체크를 했고 회사를 다닐 땐 회사원에 체크를 했다. 그런데 주부는 어디에 체크해야 하나. 심지어 주부라는 선택체크박스조차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잠시 나의 양심과 대화를 한 후 프리랜서에 체크를 하곤 했다. 무직이라고 하기엔 너무 슬프니까. 


주부는 뭔가 폼이 안 난다. 당당하게 직업이 주부라고 말을 하기가 부끄럽다. 언제쯤 당당하게 제 직업은 주부입니다라고 말하는 날이 올까? 




아이를 낳기 전의 일이다. 디아블로 3이라는 PC게임의 확장팩이 출시가 되어 용산역에서 크게 오픈 행사를 했다. 블리자드의 게임을 참으로 좋아했고 새로운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참지 못해 행사장으로 달려갔다. 당연하게도 행사를 기다리는 줄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그중에 커플들이 좀 섞여 있긴 했지만 극 소수였고 그중에 여자 혼자 서 있는 내 모습이 참 튀어 보이긴 했었나 보다. 그 당시 케이블 게임 방송에서 행사를 취재하러 왔다가 나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게임 출시일에 행사장에서 게임패키지를 받겠다고 달려간 터라 화장이 웬 말인가. 입기 편한 야상에 카키색 모자를 쓴 나는 한사코 카메라에 잡히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인터뷰 안 할 거라고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결국 인터뷰 요청에 응해 버리고 말았다.


이름과 현재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 주시겠어요?


헐! 순간 당황했다. 내 직업을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이 방송이 나가면 아는 사람이 볼 지도 모르는데 그냥 프리랜서라고 말할까? 온갖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반사적으로 이렇게 답해 버리고 말았다.


제 이름은 000이구요. 주부인데요. 


 대답을 들은 앞에 분들이 피식 웃으셨다. 그럴만도 하지. 당당하게 저 주부예요! 라고 카메라 앞에서 외치는 이런 여자 어디에도 없을 거다. 그것도 게임 출시 행사장에서. 30살 넘게 먹고도 게임하겠다고 평일 낮에 줄 서있는 자신이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방송에 박제가 되다니. 주부는 이렇게 용감하다. 



결국 방송이 나가고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름 옆에 당당하게 주부라고 적힌게 다들 웃겼나 보다. 내가 봐도 웃기는 구나. 이건 어디서 온 자신감이였을까? 이름 석 자 옆에 적힌 주부라는 나의 직업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때서야 깨달았다. 


서툴지만 할 건 하는 나의 직업은 바로 주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