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에 본 온도인지 모르겠다. 작년 봄 코로나 걸렸을 때 40도에 가까운 고열을 찍고 난 후 일 년 반만의 고열이다. 원인이 뭘까. 최근 그렇게 무리한 일정도 없었거니와 주말엔 어디 나가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일요일 밤부터 시작된 고열에 엄마는 자꾸 과거를 되짚어 본다.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았나?
자는 아이가 더울까 봐 선풍기를 너무 가깝게 두었나?
애가 설사를 하는데 마트에서 먹었던 시식 중에 상한 제품이 있었나?
뭐가 문젤까...
뭐가 문제일까...
물론 아이가 아픈 게 엄마 탓은 아니다. 아이는 이제 나와 함께 하는 시간보다 밖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고 내가 모르는 아이의 시간들이 그렇게 누적되어 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요즘 아이의 학급에선 연일 전염병이 돌고 있고 결석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니까 내 탓이 아닐 수도 있다. 요즘은 별의별 병이 유행하는 시기니까.
어쨌든 이런 고열은 오랜만이다 보니 집에 해열제도 넉넉하게 남아있지 않았다. 아이가 어렸을 땐 교차복용해야 한다고 이 종류 저 종류로 집에 약국을 차릴 정도로 해열제를 쟁여 놨었는데 말이다. 하필 또 주말에 열이 나서 하필 또 해열제가 없어서. 이렇게 준비성 없는 내가 어찌나 화가 나던지. 밤늦게 가까운 편의점으로 달려가 부루펜을 샀다. 우리 애는 타이레놀이 잘 듣는데. 하필 또 타이레놀은 없는 걸까. 모든 상황이 나의 탓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며 죄책감이 나를 옥죄어 왔다. 실로 오래간만의 고열 앞에서.
엄마 나 저녁 못 먹겠어.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다고 '오끼남'이란 별명을 붙여준 아이다. 그런 아이가 아프다는 신호는 열도 아닌 바로 입맛상실. 도저히 밥이 들어갈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조금만 배가 고파도 못 참는 애가 밥을 못 먹는단 건 정말 아프다는 얘기다. 목이 많이 부은 건지 속이 거북한 건지.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걸 보면 장염인 건지. 그동안 아이가 아파왔던 임상학적 경험을 토대로 멋대로 병명을 추측해 보는 엄마다. 간이키트 음성인 거 보면 코로나일 확률은 적은데 그럼 장염인 걸까? 아니야 장염이라기엔 너무 고열인데.
아이가 고열로 힘이 없어 침대에 누워 있는 뒷모습을 보니 아이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내가 야속했다. 이 긴긴밤을 저렇게 뒤척이며 보낼 아이 생각에 쉬이 눈을 부칠수도 없는 엄마. 내일은 좀 더 좋아질지 알 수 없는 미래를 추측해 본다. 한 살 한 살 커지면서 그래도 고열엔 어느 정도 버티고 있지만 아픈 걸 지켜보는 건 역시나 고통스럽다. 모든 것이 내 탓같아서. 아이가 아프면 그렇게 엄마는 괜스레 죄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