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나 같은 초보 주부를 구원하는 이모님이 세 분 계시다. 이름하야 '3대 이모님'. 건조기 이모님, 식세기 이모님, 로봇청소기 이모님. 그중에 가장 먼저 생겼던 이모님은 건조기 이모님이셨다. 이후 가장 가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고민이 되었던 이모님이 바로 식세기 이모님. 요리하는 것만큼 치우는 것이 귀찮았던 나였지만 식기 세척기의 필요성이 확 와닿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손으로 하는 게 더 깨끗하지 않을까?
헹궈서 차곡차곡 그릇을 식세기에 정리하는 시간이 더 아까울 것 같은데?
건조기와는 달리 식기 세척기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사야 할 이유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한가득 쌓여 있는 그릇을 씻으면서 문득문득 생각나는 식기세척기에 대한 미련. 미련곰탱이가 바로 여기 있네.
손으로 하는 설거지는 여러 문제를 동반했다. 예전에 엄마가 고무장갑을 끼고 꼭 설거지를 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다. 귀찮다고 맨손으로 설거지를 했더니 뜨거운 물과 세제로 어느 순간 손등은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니 온몸의 관절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이젠 손목도 예전 같지 않다. 코로나가 세상을 점령한 이후 집에서 삼시 세 끼를 해결하기 시작하니 요리하고 설거지하는 데 나의 기력을 다 쓰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주말에 설거지만 좀 도와주면 어떻겠냐고. 평일동안 회사일에 지쳐 주말에 쉬고 싶어 하는 건 알겠지만 난 코로나 때문에 삼시세끼 설거지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기분이라고. 주말에 한두 번 정도는 설거지를 좀 도와주면 안 될까?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
오늘 퇴근길에 00 마트에서 식기세척기 전시품 세일하는 걸 봤는데 한 번 보러 갈래?
사람이란 참 알 수 없는 존재다. 예전에 이미 몇 번이나 식기세척기를 사달라고 졸랐다가 타박만 맞았는데 말이지. 먼저 이렇게 식기세척기 얘기를 꺼내 주다니? 절호의 차 안-스가 아닐 수 없다. 전시품이든 할인제품이든 말나 왔을 때 사고 말겠다며 우리는 그렇게 00 마트로 향했다.
짠순이 남편도 거지 같은 설거지는 도저히 하기 싫었나 보다. 코로나 창궐 2년 차, 그렇게 나는 염원하던 식세기 이모님을 집에 모실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야! 네가 나를 이렇게 설거지 지옥에서 구해주는구나!
식세기 이모님이 오시고 난 후 확실히 삶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내 손으로 하는 것보다 더 깔끔하게 설거지를 해 주는 식세기 이모님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처음에는 전기세 물세 아깝다며 못 쓰다가 내가 설거지하는 것보다 물을 덜 소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이모님께 모든 걸 맡기는 요즘. 주부로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기계에 맡기는 느낌도 들지만 이 해방감을 좀 더 즐기고 싶다.
만들고 먹고 치우는 이 단순한 인생의 사이클이 아직도 힘들지만 어쩌겠는가.
오늘도 나는 주방에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