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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라떼 Jul 14. 2023

마이너스의 손이 바로 저예요

내 손에 들어오면 일단 모두 파괴되고 말지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오늘도 내가 한 건 했구나.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게 진짜일리 없어 

일 년 여 넘게 애지중지 키우던 행운목의 유리병이 와장창 하고 깨졌다. 원인은 아마도 핸드폰에 달려있던 줄이었나 보다. 아무 생각 없이 폰을 들고 커튼을 치려다 유리병이 줄에 걸려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눈앞에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걸 언제 다 치울 건가, 그리고 깨진 유리병은 무엇으로 당장 대체해야 하려나.



나는 요리만 못하는 게 아니다. 식물도 못 키운다. 우리 집에 들어온 식물은 족족 죽어나가기 바빴고 이 행운목은 그나마 수경재배로 쉽게 키울 수 있다기에 데려온 아이였다. 그런데 병을 이렇게 깨버리다니. 일 년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잘 키웠다 싶었는데 이렇게 일을 치르고 마는 나였다. 흙손인 걸로 모자라 파괴손이 따로 없구나. 


역시 내가 식물을 키우겠다는 건 과한 욕심이었나? 


어쨌든 일어난 일은 수습해야 하고, 아이가 행여 유리조각을 밟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하나하나 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운목이 이사를 갈 유리병을 찾았다. 일단 행운목을 살려야 하니 어디라도 넣어놔야 할 텐데 적당한 게 없을까 두리번거리던 즈음 내 눈앞에 들어온 아이스용 유리잔이 보였다. 바로 이거야!


행운목이 들어갈 만한 적당한 폭과 길이를 가진 컵이었다. 사실 아끼는 컵이기도 했다. 또 유리에 넣으려니 내가 깨버릴까 봐 두렵긴 하지만, 그래도 유리병에 들어가 있는 행운목이 예쁘니까. 바닥에 떨어진 충격으로 잎이 몇 개 떨어져 버린 것에 가슴이 살짝 아려왔다. 행운목의 뿌리가 다치지 않게 다시 하나하나 옮겨 심었다.



못난 주인을 만나 오늘 하루 고생한 행운목, 오늘 쓸데없이 집안일거리를 셀프로 더해버린 나다. 청소도 요리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주부지만 그래도 내 집에 들어온 식물들만큼은 이제 더 이상 죽이지 않고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다시 쑥쑥 자라서 이 집에 새 잎을 더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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