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무렵 처음으로 나의 방이 생겼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에게는 동생이 2명이나 있었고 아파트가 아닌 일반 상가에 딸린 방에서 모두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나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사치스러운 소원이었다. 동생들과 함께 방을 쓰면서 나는 점점 학년이 올라갔고 부모님께 공부가 안된다는 핑계를 대면서 계속 내 방을 만들어 달라고 힘든 부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나의 소원에 지치셨는지 아빠는 결국 창고로 쓰던 작은 쪽방을 개조하셔서 나의 공부방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방은 성인 한 명이 일어서면 천정에 머리가 닿을 만한 낮은 방이었다. 양팔을 벌리면 꽉 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좁은 방이었다. 책상 하나랑 의자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찰 것 같았던 그 방, 좁아도 내 방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동생들이 오지 못하는 금단의 구역.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기쁨에 아빠 엄마랑 함께 장판을 깔고 벽지를 발랐다.
하지만 방뿐만이 아니다. 새 책상을 살 형편 또한 되지 못했던 우리 집, 나는 그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의 책장이 딸린 책상이 가지고 싶었다. 이젠 다시 아빠를 졸랐다. 책상을 사달라고. 친구집에서 봤던 책장이 딸린 책상이 가지고 싶다고. 아빠는 직접 책상을 만들어 주겠다며 공사장을 돌아다니시며 남는 나무판자를 구해오셨다. 그 나무판자를 하나하나 곱게 사포질을 하시고 조립하셔서 연한 에메랄드 빛의 페인트를 칠해서 책상을 만드셨다. 아직도 아빠가 칠해주던 그 책상의 페인트 냄새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아빠가 딸을 위해 만들어 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책상이었음에도 그 시절의 나는 새것이 아니라고, 친구집에서 봤던 멋진 원목스타일의 책상이 아니라고, 부끄럽게 왜 이렇게 만들어 주냐고 투덜거렸다. 어리고 마냥 미성숙했던 그 시절. 그 시절로 돌아가 아빠의 사랑이 가득했던 그 에메랄드 책상 위에서 나 혼자 책을 맘껏 읽고 싶다.
책상에 대한 나의 집착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나만의 책상이 꼭 필요했다. 혼수가구를 골랐을 때 책상부터 골랐던 나다. 하지만 결혼 후 두 번째 집으로 이사 갈 때 형편상 평수를 줄여서 가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책상을 정리할 때가 와버린 거다. 남편은 더 이상 공부도, 일도, 게임도 안 하는데 책상이 왜 필요하냐고 나에게 물었다. 부피만 차지하는 이 책상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이 책상을 정리하면 왠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이 없는 나의 삶이 상상되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 책상으로라도 주겠다고 생떼를 부렸다. 그렇게 나의 고집으로 인해 신혼 때 마련했던 책상은 아직까지 13년째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고선 제대로 된 책상 대접을 받으며 인생 제2막을 열고 있는 요즘이다.
주부가 되면 다들 꿈이 없어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집안일 속에서 나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아채는 것도 힘들다. 그저 이 힘든 일이, 육아가 끝나고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 건 당연하다. 어느 누가 지치고 힘든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을까? 하지만 이 책상이 없었다면 난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힘든 집안일 속에서도 내 책상 앞에 앉으면 없던 힘이, 떨어졌던 자존감이 불쑥 솟아난다. 내 책상 앞에 앉아있는 이 순간이 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휴식시간과도 같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