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독립 그거 먹는 건가요
이제 아이를 키우기 시작한 초보엄빠들에겐 절실한 소원인 수면독립. 옆집 애는 눕혀만 놔도 잘 잔다는데 우리 애는 왜 등센서를 가지고 태어나서 눕히기만 하면 깨는 걸까. 조리원에서 퇴소한 후 집으로 온 순간부터 시작된 지옥 같았던 나날들. 그때의 소원은 단 하나뿐.
제발 1시간, 아니 30분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푹 자고 싶어.
아이가 잠깐이라도 잘 때면 그동안 밀린 집안일을 하고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거나 씻었다. 그때의 나에게 잠이란 사치품과 마찬가지였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어느 순간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기 시작하니 점점 인간성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이게 사람이냐, 짐승이지. 얼굴이 빨개지도록 우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안에 모성애라는 게 과연 존재하기나 한 건지 의문스러웠다. 그렇게나 원했던 아이가 내 눈앞에 있는데. 왜 울음소리를 참지 못하는 엄마가 되었을까. 아이보다 자신의 힘듦이 먼저 생각이 날 때마다 죄책감에 휩싸였다. 모성애가 없는 엄마인 것 같아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다.
아이를 낳기 전엔 산후우울증이 오는 엄마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엄마들은 모성애가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아뿔싸. 애 낳고 보니 나라고 그들과 다를 바 없구나. 빽빽 울고 있는 아이 때문에 멍해진 정신으로 나갈 수 없는 바깥 풍경을 쳐다보며 생각나는 건 이것뿐이었다. 뛰어내리고 싶다. 탈출하고 싶다.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긴 할까.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는 문제였다는 걸. 그러나 지금 이 순간 1분 1초는 도저히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나의 시간도 멈춰 버렸다.
벌게진 눈을 비비며 인터넷을 뒤졌다. 수면독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 외국사람들처럼 쿨하게 수면독립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보았다. 아이와 한 몸이 되어 있는 나에게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방법들이었다. 어떻게 아이를 따로 재울 수 있어. 울고 있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라니 내 눈엔 아동학대처럼 보였다. 애가 불쌍하잖아. 갑자기 없던 모성애가 튀어나오기라도 한 듯 혼자서 씩씩대고 말았다. 그렇게 인터넷의 그 방법들은 마음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자고 싶다. 제발 자고 싶다. 푹 자고 싶다. 우리 이제 독립하자. 제발. 인내심의 유통기한은 50일이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그 방법이 생각났다. 애가 울어도 미국 엄빠들처럼 쿨하게 방을 나가라고. 영원히 울 것 같던 아이도 언젠간 엄마가 옆에 없다는 걸 알면 울음을 그칠 거란다. 그럴듯했다. 그래, 서양 사람들은 이렇게 애를 옆에 끼고 재우지 않잖아. 다 같은 인간인데 한국 사람들만 아이를 과잉보호해. 나도 쿨해져 보자.
둘리에게 최면을 거는 의사아저씨가 나쁘다고 생각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천방지축 사고를 치고 다니니 최면이라도 걸어 재우고 싶었을 의사 아저씨의 그 마음. 어릴 적엔 어른들은 다 나쁜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이해합니다. 우리 아이가 둘리 같아 보여요. 지금 내가 잠을 못 자니 아이에게 최면을 걸어서라도 재우고 싶은 느낌이었다. 제발, 그대로 쭉 자라.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시작하니 이 방법이 진리처럼 보였다. 그렇게 쓱 잠이 든 아이를 살포시 눕혀놓고 방을 나섰다.
까불지 말고 자라, 자라.
문 밖을 넘어 귀를 찌르는 아이의 울음소리. 등센서는 눈치 없이 제대로 작동했다. 한 번쯤 센서가 오류가 날 법도 한데 기가 막힐 노릇이다.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울지 마 아가야, 그냥 이대로 다시 잠에 들어줘. 엄마는 옆에 없어. 울어도 가지 않을 거야. 혼자 그렇게 잠들어 줘. 엄마도 살고 싶어.
그러나 나의 인내심은 단 5분이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그 시간만큼은 5분이 아닌 50분이 지난 것 같았다. 이러다가 우리 아이 목이 쉬면 어쩌지. 잘못되면 어쩌지. 이걸 참아내는 서양사람들은 인간도 아닌 건가. 5분 동안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많은 생각들. 다시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를 안고 토닥거려 줬다. 미안해,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왔어. 토닥토닥.
다시 둘리 같은 아이를 안고서 둥기 둥기 해 줬다. 그래 잠은 포기하자. 잠을 못 자는 고통보다 너의 울음소리가 내 마음을 더 고통스럽게 한다는 걸 이제 알았으니까.
사진:pixabay
일러스트:마이라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