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끝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두 달간의 겨울 방학의 끝이 보인다.
선배맘들로부터 초등학교 겨울방학의 무서움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코웃음 치던 나였다. 두 달이라, 조금 길긴 하지만 이제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졌으니 유치원 3주 방학보다 버틸만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 기회를 잘 활용해서 후회 없는 1학년 겨울방학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음만 말이다.
시작은 거창했다. 예체능 빼고 집에서 나와 엄마표로 학습을 하는 아이를 위해 이번 겨울방학은 놓칠 수 없다는 생각. 문제집을 사고 어떤 내용이 있는지 스르륵 훑어본다. 살피다 보니 이 정도면 두 달 동안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같이 생겼다. 독서, 영어, 수학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다는 당찬 엄마의 겨울방학 계획표는 그렇게 방대하게 출발했다. 맞아, 이 모든 것을 매일매일 체크할 스케줄러도 잊을 수 없지. 거실 테이블 위에 잘 보이게 올려 두려고 탁상형으로 주문까지 완료했다. 부족한 건 없어 보였다.
딱 3일였다.
작심삼일이란 말, 누가 먼저 만든 걸까. 이보다 찰떡인 단어가 없다. 인간은 다 똑같은 건지 아니면 우리만 이 모양인 건지. 방학과 함께 물 흐르듯 순항할 것 같았던 우리의 겨울방학 계획은 시작부터 난관을 겪고 있었다. 갑자기 1월 초부터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몰려오고 아이는 거짓말처럼 방학과 동시에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있는 오전 시간을 알차게 엄마표 학습으로 활용하고 오후는 예체능 학원을 가며 저녁엔 독서를 할 것이라는 우리, 아니 나의 계획은 방학 첫날부터 삐그덕 소리를 내고 있었다. 슬슬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이번 겨울 방학은 망할 것 같다는 예감. 큰 일이다 큰 일.
처음엔 하루 이틀 정도야,라는 생각이었다. 밀린 진도는 주말을 이용하면 될 것이라고 아이를 다그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방학과 함께 풀어진 건 아이뿐만 아이라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집안일에 서툰 엄마는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다 차리고 치우는데 많은 시간과 기력을 소모했다. 아이는 집에 있는 것 같은데 빨래는 왜 더 쌓이는 느낌일까. 청소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의 집안일을 하고 나면 엄마표 학습을 진행할 시간과 기력이 바닥났다. 유치원 방학은 천국이었구나. 침대에 누워 방전된 체력을 회복하면서 내일을 위한 파이팅만 외쳤다. 그렇게 매일 다짐만 하는 채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한 달이 되었다.
새로 산 문제집은 표지가 그저 깨끗하기만 했다. 하루하루를 생각 없이 보낸 대가가 바로 이거구나. 분명 하루 이틀 정도만 빠진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빠진 날들이 모이니 이건 공부한 날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중간중간 여행일정이나 체험학습등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미 지나가 버린 한 달은 어쩔 수 없다. 다시 계획을 전면 수정해서 나머지 한 달이라도 알차게 보내보자. 후회했을 때가 늦은 것이 아니라 가장 빠른 지금일 수도 있으니까. 분명 한 달 후는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 거야.
두 달이 지났다.
문제집은 한 달 전보다 1프로 정도만 더러워진 듯 보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매일매일 스케줄러를 써보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실행한 것은 일주일에 기껏해야 1~2일 정도. 주말은 그저 밖으로 놀러 가기 바빴다. 하루에 1시간이라도 했다면 이러진 않았을 텐데 지나간 두 달 동안 왜 그렇게 시간이 나기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정말 피곤해서 그랬던 걸까? 인간적으로 이건 너무하지 않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만약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이 겨울방학 결산보고서는 상사에게 당차게 까였을 것이 분명하다. 방학 동안 도대체 당신은 뭘 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집안에서 보고서를 결산해 줄 상사는 없다. 바로 나 자신 말고는. 이 결산서에 뭐라고 사인해야 할까.
'귀하의 결산서는 반려되었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첫 초등학교 겨울방학은 끝났다.
조금은 벅차보였던 엄마의 부푼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이는 이제 학교에 다시 다니기 시작해야 한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그렇게 흘려버린 시간은 주워 담을 수 없게 되었다. 엄마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만큼 아이는 새 학년 새 학기를 착실하게 보낼 동력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