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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희 Mar 12. 2020

찬실이는 복도 많지,  장국영도 만나고

나의 레슬리 ep31 : 다른 영화 속의 장국영

이상하도록 장국영에 대한 소식이 자주 들리는 요즘이다. 연초에는 그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라 불러도 손색없었을 뮤지컬 <영웅본색>이 국내 무대에서 막을 올렸고, 4월 1일에는 <패왕별희>가 재개봉된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이하 찬실이)>에는 난닝구 바람의 장국영이 등장한다. 특히나 <찬실이>에는 장국영이 '아킷'이나 '데이'같은 극중 인물이 아닌, 장국영 본인으로 나온다고 한다. 그것도 귀신으로.


뭔가 건장한 느낌이 드는 <찬실이> 속의 장국영, 김영민 배우


<찬실이>를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발견했던 날, 아련하고도 장난스러운 얼굴을 한 극 중 장국영의 스틸컷과 포스터에 어찌나 빵 터졌던지. (물론 그럴 리가 없지만) 진짜 장국영이 아니라, 본인이 장국영이라 우긴다는 인물의 설정은 또 어떻고. 덕분에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이 영화 속 장국영은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은 있는 바보 형 내지는 '살짝 맛이 간' 형이었다. 그런데 궁금함을 못 참고 시놉시스를 찾아보니 무려 귀신이란다.

세상에, 이건 꼭 봐야 해! 하는 마음이 드는 한편, 극장에 가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고개를 든다.


모두들 그렇겠지만 코로나가 본격화되면서는 평소 루틴에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끼워 넣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나 하나 걸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떤 식으로든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이 부담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므로. 그리고 00번 확진자라고 라벨링 되어서 내 동선과 삶이 모두 공개되고, 누군가의 농담거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 역시 마음의 부담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실 이 작품을 보는 것은 코로나 종식 이후로 미뤄두었더랬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느새 희끗희끗 염색 발이 다 해버린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것도, 생일을 맞은 가족을 위한 식사도 모두 코로나 이후로 밀어둔 것처럼.

대신에 나는 마스크를 더 동여맸다. 지독한 감기에 걸렸던 어느 해 겨울에 열심히 쓴 것 빼고는 일생 마스크 하고는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마치 제2의 피부라도 되는 양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 보면, SARS를 피하기 위해 온통 마스크를 쓰고 다녔던 2003년의 홍콩 사람들이 문득 생각나곤 했다. 그리고 SARS 때문에 레슬리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할 수 없었던 그 해의 답답한 마음도. SARS의 한가운데에서 세상을 떠난 레슬리의 소식이 홍콩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이었을지 처음으로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렇게 현재의 나를 스쳐가는 듯했다. 이 영화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며 함께 보러가자 청한 친구도 두엇 있었는데도 모두 에둘러 사양했다. 그런데 그 거절이 무색하게 지인 중 한 사람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하나에 나는 충동적으로 <찬실이>를 예매했다. 그리고 다음 날 마스크를 칭칭 동여매고 극장의 끄트머리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이 모든 것은, 지인이 쓴 글 속의 "내 장국영"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정확히 원문을 옮겨보자면, "영화를 보며 내 장국영을 떠올렸고, 안정을 찾았고,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이 글을 읽는데 마스크처럼 꽁꽁 동여매 두었던 마음이 스르륵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영화를 보고나니 더욱 의미심장, 재미있는 포스터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찬실이가, 너무 나 같아서 계속 눈물이 났다.


사실 나는 요새 꽤 스산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나 역시 현실과 이상의 사이에서 고민이 깊은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꿈을 좇아, 잘 포장된 길에서 빠져나와 비포장도로를 덜컹덜컹 달리고 있는 것이 요즘의 나였으니까. 들썩들썩 덜컹덜컹 하지만 그래도 꽤 만족스러운 길이었는데, 코로나가 참 많은 것들을 뒤바꾸어 놓았다.

그래서 또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던 참이었다. 내 앞에 놓인 두 갈래, 혹은 세 갈래의 길 중에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그리고 그중 하나를 택한다 한들 그것이 온전한 선택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던 차였다. 내가 느끼기에 극 중 찬실이의 상황은, 겉포장지는 다르지만 내용물은 나와 꼭 닮아있었다.


덕분에 순간순간 찬실이의 마음이 너무나도 고스란히 느껴져서, 찬실이가 꼭 나 같아서 눈물이 났다. 누군가 극장에 혼자 앉아서 마스크를 쓴 채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나를 보았다면, 아마도 꽤나 사연이 있는 여자구나 생각했을게다. (뭐, 사연이 없는 건 아니지)

나 스스로 선택한 길 앞에서도 이렇게 막연한 마음이 드는데,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상황에 던져진 찬실이는 오죽할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찬실이가 극 중 인물이 아니라,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가상의 인물에게 이렇게 빙의해본 것이 참 오랜만이구나 싶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렇게 주룩주룩 울어서 숨이 탁탁 막히는데도 끝까지 (살아보겠다며) 마스크를 사수해낸 스스로가 참 웃기기도 했다.


내 눈물샘을 가장 세게 강타한 장면은 장국영이 찬실이에게 건넨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깊이 생각해보라"라고 말하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라는 말 역시.

장국영 귀신이 한 말은 어떤 선택이 더 '나을까'를 생각했지, 내가 어떤 쪽을 더 원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만큼 치열하게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일련의 고민들을 지나오며 스스로에 대해 자뻑보다는 질책을 더 많이 했던 내 마음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왜 나는 나에게 이다지도 박했단 말인가.


어느덧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사라지고 스크롤이 오르는 것을 보며, 찬실이는 정말로 복이 많구나 생각했다.

장국영에게 카운슬링과 응원을 받다니!

나에게도 찬실이처럼 레슬리가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어쩌면 이 영화 자체가 나에게는 '장국영 귀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어낸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글을 읽으며, 어쩌면 나는 100분짜리 '김초희 감독의 레슬리'를 본 셈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찬실이처럼, 나도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보겠다고. 그리고 다시 힘을 내보겠다고.



우주에서도 응원할게요.




https://brunch.co.kr/brunchbook/myles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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