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일 - 장국영의 흔적을 찾아서

나의 레슬리 ep35 : 장국영과 함께 걸어온 시간들 (6)

by 장지희

이번에는 2019년, 지난해의 만우절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앞서 재작년 만우절의 홍콩 여행기를 풀어놓으면서, 홍콩에 출장 갔다가 만우절 하루 전날에 서울로 돌아와야 했던 이야기를 잠깐 했었다. 사실 그건 바로 지난해의 이야기였다.


3월 29일에 떠나 31일에 돌아온 출장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벌인 것이 지난해 2월의 일이었던 터라, 사장님이 보내준 출장이 아니라 내가 내 발로 간 출장이었다.

3월 30일과 31일이었던 토요일과 일요일에 업무를 마쳐야 하는 스케줄이라 처음엔 당연히 만우절까지 보내고 오겠노라 생각했다. 하지만 4월 1일에 도저히 변경할 수 없는 일정이 생겨버렸다. 그래서 결국 눈물을 머금고 3월 31일 오후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2박 3일이었지만, 워낙 빡빡한 일정이라 딱히 어딘가를 놀러 다닐 수 없는 상황. 이동하는 도중에라도 잠깐 들러볼 만한 곳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던 나는 구글맵에 아주 오래전에 등록해두었던 스팟 하나를 기억해냈다.


바로, 레슬리의 아버지가 하던 양복점이 있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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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의 아버지 張活海의 양복점이 있었던 홍콩섬 센트럴의 D’aguilar St 18번지.



잘 알려진 대로 레슬리는 영국 리즈대학에서 방직학(Textile)을 전공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왜 하필 디자인도 아닌 방직을 전공했을까 하는 것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의문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심지어 한 토크쇼에 레슬리가 직접 나와 이야기를 했는데, 그의 전공은 아버지의 사업구상으로 인한 것이었다고. 홍콩에서 ‘양복대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남성복 분야에서는 대가로 자리를 잡은 아버지는 여기에 여성복 라인을 추가하는 것을 목표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막내아들 장국영을 그 여성복 라인을 맡게 될 적임자로 일찌감치 점찍어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남성복을, 아들은 여성복을 맡아서 홍콩 패션업계를 주름잡겠다는 구상에 레슬리도 큰 관심을 보이고 유학을 결정했다고. 그저 가업을 잇고 진로를 결정하는 차원의 선택이었지만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단순히 재봉기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 디자인, 예술 등 다양한 강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빠져 들게 된 모양이었다.


비록 아버지의 병환으로 학업을 마치지는 못했지만, 이때의 경험은 레슬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활동 내내 뛰어난 패션센스를 가진 스타로 손꼽히기도 했고, 1988년도에는 일본에서 열린 동경가요제에 가수가 아닌 이미지 컨설턴트로서의 자격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같은 소속사의 여가수인 백안니의 의상과 이미지 전반을 담당한 것이다. 백안니와 함께 도쿄로 가서 그녀의 의상은 물론 어떻게 무대를 연출해야 할 지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조언을 했다고 한다.



IMG_4637.JPG 동경가요제 당시 백안니가 입었던 의상.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예쁘다.



종합해보면, 아버지가 하던 양복점의 자리는 어쩌면 '테일러' 장국영이 여성복을 만들게 되었을지도 모를 장소인 셈이다.


여기서 망상 레이더를 한 번 돌려본다. 만약 계획대로 영국 유학을 끝마쳤더라면 레슬리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쩌면 Leslie Cheung이라는 이름을 영화 크레딧이나 앨범 커버 대신에 여성복 라벨에서 보게 되지는 않았을까. 그랬다면 어쩌면 나는 그 라벨이 붙은 옷을 입어보는 것을 로망으로 삼았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레슬리는 센트럴 역에서 내려 란콰이퐁을 가려면 지나쳐야 하는 길목에서 쓰리피스 양복을 잘 갖춰 입고 목에 긴 줄자를 척 걸치고서 열심히 재단과 디자인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홍콩섬 센트럴의 D’aguilar St 18번지, 옛 양복점 자리에는 지금 무엇이 있을까.

일정과 일정 사이에 부러 길을 돌아서 들러본 그곳에는 화장품 판매 체인점 SASA와 세븐일레븐이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마치 말도 안 되는 망상 따위 그만하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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