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슬리 ep39 : 내가 사랑한 배우 장국영 (6)
後榮迷(후영미 / 중국어로는 ‘허우롱미’로 발음한다)라는 말이 있다. 사후에 레슬리의 팬이 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따로 이름이 붙을 정도이니 그 수가 꽤 많은 모양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저릿, 하고 요동친다. 나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라 어떤 감정일지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척 쓸쓸한 기분일 것 같다.
이미 떠나고 없는 이를 아끼고 그리는 것만큼 쓸쓸한 일이 없는데. 살아생전을 오롯이 기억하는 쪽이든, 이미 떠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도 애정하기 시작한 쪽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자는 전자대로의, 후자는 후자로서의 슬픔과 쓸쓸함이 있을 터.
하지만 솔직히 이야기하면, 나는 그래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재개봉이 아닌 새로 개봉한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국내에 출시된 그의 앨범을 구매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버스를 놓친 줄도 몰랐다가 세월이 훌쩍 흐른 후 “왜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지 않을런지. 하지만 이조차 상상이고 짐작일 뿐, 나로서는 어떤 마음일지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랑하고자 쓴 글이 아님에도 예전 일들을 말할 때면 그분들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과거 작품들이 다시 개봉할 때마다 누구보다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레슬리의 얼굴과 연기를 만나는 기쁨을 모두와 함께 누릴 수 있어서 반갑고 고맙다.
10여 년 전에 충무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열화청춘>, 비슷한 시기에 재개봉되어서 화제가 되었던 <영웅본색>, 4월 1일이 되면 단골손님처럼 다시 찾아오는 <아비정전>, 수년 전에 반짝 재개봉했던 <성월동화>.. 꽤 많은 작품이 다시 개봉되어 팬들을 찾아왔다.
그리고 2020년, 올해는 <패왕별희>가 돌아왔다. <패왕별희>는 레슬리의 기일인 4월 1일에 맞춰 재개봉을 준비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한 달이 미뤄진 끝에 얼마 전 막을 올렸다. SNS에 쏟아져 나오는 감상평들을 읽다 보니 꼭 1993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1993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이미 한 두 해 전부터 <스크린>이나 <로드쇼>의 기사를 읽고 레슬리가 <패왕별희>라는 영화를 촬영 중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는 네 글자의 제목만 언급될 뿐, 촬영장이나 스틸 사진 같은 것은 통 보이질 않았다. (홍콩이 아닌 중국 대륙에서 촬영된 작품이었기에 당시만해도 취재가 쉽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래서 나는 ‘패왕’이라는 단어만으로 멋대로 누아르 영화를 상상했다. 당시에 영화 제목에 그 단어가 들어가면 대부분 총격신이 난무하는 작품이었으니. 이제는 중국 대륙의 예술영화 감독도 총싸움하는 영화를 만드는구나 막연히 생각했다. 그래, 역시 자본이 캡이지.
그런데 93년 봄, 이 작품이 칸느라는 처음 들어보는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그 소식과 함께 전해진 레슬리의 경극 분장은 나에게는 꽤 쇼킹했다. 게다가 다소곳이 모은 두 손은 또 왜 이렇게 조신한거람. <가유희사>에서 선보였던 여성스러운 캐릭터도 탐탁지 않았는데, 아예 여장을 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게다가 안 그래도 멘붕인데, 부아를 건드리는 기사들도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한 영화잡지에 실린 “<패왕별희>에서의 장국영의 연기가 평면적이다”라는 글을 보고 분개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직접 보고 쓴 글도 아니고, 현지 언론 평을 그대로 번역해서 낸 것이라 더 화가 났다. 그 기사를 낸 기자를 격렬히 씹어대느라 레슬리의 경극 분장에 놀라고 황당해했던 마음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아마도 “까도 내가 깐다”는 마음이었을게다.
그렇게 기사로만 회자되던 <패왕별희>가 드디어 국내 극장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해 12월이었다. 함께 몰려다니던 친구 셋에게 “이 영화를 함께 보지 않으면 앞으로 니들이랑 절대 안 놀겠다”는 엄포를 놓고, 유명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라는 명분으로 친구들의 부모님을 간접 설득한 끝에 절친들과의 단관이 이루어졌다. 방학이 시작된 직후, 지금의 논현역 근처에 있던 뤼미에르 극장에 아침 일찍 가서 줄을 서서 표를 끊고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넷 다 훌쩍훌쩍 울었다. 늘 티슈며 거울같은 것을 가지고 다녔던 한 친구가 티슈를 한 장씩 뽑으면 한 칸씩 옆으로 옆으로 전달되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깃발처럼 펄럭거리며 전달되는 티슈의 행렬에 뒷자리의 누군가가 풉 하고 웃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 소리에 우리도 아마 울다가 웃었던 것 같다.
유독 추웠던 그 날, 우리는 나란히 소복하게 부은 눈을 하고서 집에 돌아왔다. 어느새 해가 져서 더 추워진 저녁, 덜컹거리는 버스 맨 뒷자리에 넷이 나란히 앉아서 돌아오는데 친구 중 하나가 슬그머니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지희야, 영화 보자고 해줘서 고마워. 나는 데이가 장국영이어서 더 슬펐던 것 같아. 데이가 다른 배우였다면 안 울었을 것 같아. 니가 왜 장국영을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소모가 컸던 탓에 꽤 지친 상태였던 나는, 그 말에 눈에 갑자기 눈에 맺혀버린 눈물을 감추려고 친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패왕별희>의 재개봉 소식이 들린 후부터 줄곧 버스 안에서의 장면이 떠오른다. 정확히는 친구가 했던 말이. 맞다, 친구의 말처럼 데이는 레슬리였기에 더 슬펐다. 그리고 지금은 레슬리가 세상을 떠난 뒤이기에, 그를 닮은 데이는 다시 보기에 더더욱 슬픈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레슬리가 온마음을 다해 그려낸 데이를 다시 만나러 가고 싶기도 하고, 다시 보았다가는 또 한동안 마음이 무척 힘들어질 것 같아 겁이 나기도 한다. 남들 앞에서는 "극장에서 여러번 본 건데요 뭐"하고 짐짓 쿨한 척 굴지만, 실은 두 마음이 실시간으로 싸우고 있는 중이다.
둘 중 끝내 어느 쪽이 이기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극장에 레슬리의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것만큼은 참 좋다.
이 역시 꼭 1993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