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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의 성장일기 Apr 22. 2024

새벽 세시까지 왜 이러고 사는 거니

미쳐버릴 거 같다. 

시작은 오늘 저녁 10시 반쯤 확인한 메시지였다. 유학에 관련해서 여러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었고, 그중 한 분의 선배가 보낸 메시지였다.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책도 추전해 주셨는데 마지막에 너 말투가 너무 딱딱해서 부담스럽다 ^^라고 하셨다. 한국말을 쓸 때는 나도 모르게 딱딱해지는 경우가 많은 데 이번에도 그런 것 같았다. 


선배는 사실, 그냥 편하게 한 이야기였을 거다 (당연하다). 정말 별거 아닌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왠지 신경이 쓰였고, 그때부터 나의 인스타그램인 링크드인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 다들 정말 화려한 커리어를 가지고 승승장구하고 있구나, 그런데 나는 너무 초라하다. 외국인들에게 점점 수요가 줄어가는 한국시장에 치중한 주식 애널리스트의 경력. 직접 투자의 경험도 없고, 한국 주식만 주야장천 봤으면서, 주식으로 제대로 돈을 벌어본 적도 없는 찌질한 나. 이 정도 경력이면 어디서 무슨 딜 리드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법도 한데, 내 머릿속에는 그냥 나 자신이 초라할 뿐이었다. 


그래서 유학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Reddit과 고우해커스를 뒤지며 남들의 이야기를 정말 열심히도 읽었다. 남들의 검증되지도 않는 의견을 아주 열심히 읽어대었다. 나는 미국의 Top스쿨인 S학교에서 1년짜리 석사과정에 합격했다. 작년 말부터 너무나 가고 싶어 하던 나의 마음은, 주변의 (몇 명에게 보이는) 부정적인 반응과 예상보다 높은 비용에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정말 이 삼일에 한번 꼴로 새로운 사람들을 붙들고 내 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감사하게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 나는 정말 왜 이렇게 사는지 진짜 모르겠다. 왜 이렇게 매사에 자신이 없고, 나의 색깔이 없는지 모르겠다. 왜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이렇게 사는지 정말 모르겠고 미쳐버리겠다. 


객관적인 나의 지표는 정말 나쁘지 않다 (보기에 괜찮은데 왜 이래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내가 자존감이 낮으니 이해해 주기 바란다). 나는 SKY 경영학부를 졸업했다. 걱정이 많은 덕에, 준비를 미리 하는 성격 덕에, 인턴을 거의 5개를 방학마다 한 후, 졸업과 동시에 호주계 증권회사의 주식 리서치 팀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나는 게, 교환학생 갔다가 학기가 끝난 후, 여행도 안 하고 인턴 때문에 바로 들어와서 엄마도 황당해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정도로 걱정이 많고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말로 리스크를 매우 무서워했다. 


외국계 증권사에 입사를 한 후, 솔직히 개 (정말 달리 할 말이 없다) 힘들었다. 우선 나는 네이티브도 아니었고, 내 보스가 정말 힘든 사람이었다. 잘못하면 뒤에서 (보스가 뒤에 앉았다) 콜라 캔이 날아왔다. 책상 밑에서 담요 덮고 자는 것도 해봤고, 캔틴에서 밤 12시에 컵라면도 많이 먹었다 (다행히 캔틴에 야근러들을 위한 먹을 게 정말 많았다). 성실한 거 하나는 자신이 있어서, 승진도 하고 커버리지도 받고 주식도 커버했다. 전기전자 섹터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좋다는 섹터는 다 해봤고 투자자들에게 보트도 많이 받았다 (애널리스트 인기투표를 보트라고 한다). 그런데 내가 제일 힘들었던 건, 나는 내 목소리를 내는 게 너무너무 힘들었다. 아니, 주식 커버하는 애널리스트가 뷰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널리스트는 주가를 맞추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투자자들에게 본인만의 강점으로 보트를 받는 사람이다. 나는 보트를 내 콜로 받은 게 아니라 특유의 성실성과 'Conneting the dots'를 하는 능력으로 받았다. 내가 다양한 섹터를 커버해 보았었고, 초반에 나를 죽을 만큼 힘들게 하던 내 보스에게 트레이닝을 기똥차게 잘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내 앞의 갈피를 잡기 못한 채 남의 말을 들으러 - 무엇 보나 나의 경력과 나의 상황이랑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말을 찾아보러 - 그리고 남의 커리어를 구경하며 3시간을 보냈다. 인터넷을 뒤지면서 든 느낌은 - 아 나 자신이 정말 대단하다 - 였다. 이 정도면 내가 생각했을 때 병이다. 회사에서 15년을 넘게 일했고, 커리어 경력을 차곡차곡 쌓았고, 지금은 미국의 Top스쿨의 석사를 갈지, 아니면 다른 오퍼를 받아서 갈지 고민하는 상황에서 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을 쫓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 사람들의 말이 너무 나와 너무 상관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내 친구가 말했듯이 될 대로 돼라 마인드로 그냥 시간을 쓰고 있다 (https://brunch.co.kr/@mylifegoeson/65). 스트레스를 받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솔직히 내가 해야 할 것은 매우 명확하다. 


1) 학교에 입학 디퍼에 대해서 문의하기 (이메일 보내면 된다); 

2) 비자에 대해서 다시 확인하기 (개인적인 이슈로 조금 복잡하다); 

3) 앞의 두 가지가 확인된 후, 다른 회사에서 준 오퍼에 대해서 결정하기. 


그런데 그걸 거의 2주 동안 머릿속에서 망상을 하면서 미루고 있다. 왜냐고? 누군가가 기분 나빠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 이다. 혹은 다른 사람에게 전화하는 게 실행이 안 되어서 이다. 믿기는가? 직장생활 경력 15년인 사람이 이 간단한 것을 하지 못해서 2주 동안 시간을 허비하는 게 정말 황당하지 않은가? 당사자인 나는 너무나 황당하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게 성장해 버린 것 지도 스스로가 너무 궁금하다. 도대체 뭘 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도 너무나도 알고 싶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불확실성이 많은 이 세계에서 계속 이렇게 살면 나는 미쳐버릴 것 같다는 것이다.  


하나라도 하면 다시 브런치 글을 쓰고자 한다. 그 시점이 빨리 되기를 다들 응원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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