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술이 달큼하게 느껴진다. '술은 마실수록 는다'던 누군가의 싱거운 소리에 고개를 젓던 내가, 이제는 그 말에 수긍하며 기꺼이 잔을 채운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유리컵 위로 소복이 솟아오른 맥주 거품은 그저 낯설기만 했다.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들이켰던 쌉싸래하고 텁텁한 맛은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는 허영심에 그 어색한 맛을 꾹 참고 마셨을 뿐이다.
그리 오래지 않아 나의 취향은 소주로 옮겨갔다. 첫맛은 아릴 정도로 썼지만 맥주보다 솔직하게 속을 데워주는 느낌이 좋았다. 마치 첫인상은 차갑지만 속정 깊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처럼 소주는 그렇게 내게 스며들었다. 직장생활 속에서 '소주를 좋아한다'라는 고백은 뜻밖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독주를 즐기는 모습 덕분인지 사람들은 오히려 술을 더 권하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술자리의 소란함 속에서도 호젓한 자유를 누렸다.
사실 내가 소주에 탐닉한 이유는 술의 높은 도수가 아니라, 잔을 타고 흐르던 다정한 대화와 사람들의 해사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취기가 올라 발그레해진 얼굴로 나누던 정(情)이야말로 내가 마신 진짜 술이었다. 한때는 소주 한 병을 거뜬히 비우던 기운찬 주랑을 자랑하기도 했으나, 무리한 탓에 위가 아파져서 그때부터 술도 시끌벅적한 회식 자리도 단호하게 끊어내며 한동안 술과 거리를 두었다.
요즘은 막걸리의 매력에 다시금 푹 빠져있다. 김장김치를 담그고 나서 친정엄마와 통화하며 "엄마, 나 오늘따라 막걸리가 술술 달게도 들어가네요"라고 넌지시 말을 하자. 엄마는 "네 아빠를 쏙 빼닮아서 그렇다"라며 나직하고 걱정 어린 목소리로 잔소리를 보태신다. 내가 막걸리를 좋아하는 것은 아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탓도 있겠지만, 우윳빛 뽀얀 색감이 주는 특유의 포근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종갓집이었던 우리 집은 일 년에 두 번 명절을 빼고도 제사가 유독 많았다. 달력에 적힌 제사가 한 달에 두 번씩 돌아올 때도 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엄숙한 자리의 무게를 알았기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꾹꾹 눌러두었던 호기심을 꺼낸 것은 성인 된 후였다. 처음 맛본 막걸리의 혀끝에 전기가 오르는 듯 생경했다. 입술이 닿자마자 왜 이렇게 써?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취기는 트램펄린 위를 뛰다 내려왔을 때처럼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 막걸리의 달큰한 질감이 고단한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진다. 오랜만에 친정에서 친정오빠와 마신 막걸리는 유독 달았다. 잔이 비워질수록 술맛은 흐릿해지고, 대신 그 자리에 가족의 추억이 진하게 차올랐다. 이 변화는 부부 사이에도 찾아왔다. 남편과는 술 한 잔 나누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마흔 줄에 들어서야 결혼기념일에 술잔을 맞부딪치기도 한다.
술은 결국 액체일 뿐이지만 그 속에는 나의 시간과 삶이 촘촘하게 녹아 있다. 술맛이 이토록 달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나의 삶이 그만큼 단단해졌거나 모난 구석이 깎여나가며 비로소 마음의 넉넉한 여유가 생겼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잔 속에 비친 내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는 여전히 술 한 잔의 온기를 빌려, 진짜 나를 찾아가는 호젓한 취기를 이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