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이 뼛속까지 시려 몸은 늘 마음보다 한 발 늦었다. 천근 같은 이불 무게에 짓눌린 채 하루가 허무하게 저물어갔고, 회복은 야속할 정도로 더디었다. 그날 아침, 남편은 말없이 외투를 챙겨 들었다. 병원에 가면서 잠시 바깥바람이라도 쐬자며 내미는 그의 손길이 담담했다. 아픈 몸으로 나서는 길이 좋을 리 없었기에 나는 툴툴되며 따라나갔다.
달리는 차 안, 라디오에서 흐르는 낮은 선율과 간헐적인 기침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병원 대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동안 남편은 내 손이 차갑지는 않은지 제 온기로 몇 번이나 살피며 가만히 보듬어 주었다. 약을 처방받고 기다리는 동안 아픔을 나누어 짊어질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남편은 익숙한 길을 비껴가며 둘러둘러 조금 먼 길을 택했다. 원두를 사야 한다는 핑계로 들른 곳은 우리의 아지트인 '나무사이로' 카페였다. 따뜻한 머틀 그린티 한 잔. 컵을 손에 들자 뜨거운 온기가 번졌고, 얼어붙었던 몸과 함께 팽팽했던 마음의 긴장도 스르르 풀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환자가 아니라 볕뉘 아래 느긋한 일상을 누리는 여행자였다.
점심은 자주 가는 국숫집에서 먹었다. 늘 앉던 자리에서 늘 먹던 메뉴를 주문했다. 국수가 나오기도 전에 습관처럼 열무김치와 단무지를 정갈하게 챙겨주는 남편의 무심한 손놀림에는 긴 설명이 필요 없었다. 오랜 세월이 쌓여 몸에 밴 배려는 말보다 정직하고 든든했다. 거창한 미사여구가 없어서 더욱 믿음이 가는 견고한 사랑이었다.
국수를 한 젓가락 후루룩 넘기며 남편에게 물었다. '오늘 로또 샀어요?'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내 인생의 로또는 당신이라고 답했다. 그 말에 쑥스러운 웃음이 먼저 터졌지만 이어지는 이제야 옥석을 알아본 것 같다는 고백에 코끝이 찡해졌다. 삶이 언제나 정답을 제때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가끔은 투닥거리는 일이 있어도, 지금 내 곁에서 진심을 건네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눈물겹게 고마웠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다. 병원을 들르고 차를 마시고 국수 한 그릇을 비웠을 뿐인데 마음속에 차오른 온기는 분명 달랐다. 몸의 열은 여전하고 내일도 고단한 회복의 시간이 이어지겠지만, 이 하루만큼은 충분히 따스했다. 아픈 나를 데리고 나선 남편의 짧은 동선 안에는 삶의 작고 행복한 기쁨들이 알알이 박힌 완두콩처럼 꽉 차 있었다.
진정한 휴식은 멀리 있지 않았다. 마음이 잠시 가벼워지는 찰나, 내편과 보폭을 맞춰 걷는 시간, 별일 없어도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평온함. 오늘의 공기와 오늘의 기분, 그것만으로도 완벽했다. 이게 바로 내가 오늘 배운, 다정한 볕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