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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봄 사이, 계절 머뭇

by 박수진


겨울과 봄 사이, 어중간한 계절이 하나 더 생긴다면 나는 그 계절을 '머뭇'이라고 부르고 싶다.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봄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아닌 애매한 시간들. 밤이면 여전히 입김이 서리고, 낮이면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지만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겉옷을 입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계절.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 사이에 끼어, 어디로도 쉽게 발을 내디디지 못하는 계절 머뭇.


머뭇의 하늘은 희미한 색을 띤다. 겨울의 새파란 하늘도, 봄의 화사한 연둣빛도 아닌 흐릿한 회색빛이다. 하늘 아래서는 나무들도 머뭇거린다. 벌거벗은 가지 끝에 새순이 맺히지만, 움트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강물도 차가운 듯 아닌 듯, 얼어 있는 듯 흐르고 있는 듯 애매하다. 모든 것이 경계에 서 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단단했던 마음이 살짝 풀어지지만, 그렇다고 봄의 설렘을 온전히 맞이할 준비가 된 것도 아니다. 어쩌면 가장 흔들리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굳게 다잡았던 마음이 따뜻한 햇살에 녹아내릴 것 같아 불안해지는 순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순간. 계절이 머뭇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머뭇의 시간도 나쁘지만은 않다. 빠르게 변하는 계절들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틈이 되어 준다. 서둘러 변화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금 더 기다려도 된다고 다독여 주는 계절. 겨울과 봄이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동안, 머뭇은 그 사이에서 천천히 스며들 듯 머문다.


머뭇의 날씨는 아침저녁으로 여전히 겨울의 잔재가 남아 있지만, 한낮에는 따스한 기운이 감돌아 창문을 열고 싶어지는 날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공기가 완전히 봄 같지는 않다. 바람을 맞으면 아직 겨울이 남아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두꺼운 외투를 벗어 들고, 가벼운 옷을 입고 싶어 하지만, 걸음을 내딛다 보면 생각보다 쌀쌀해 다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머뭇의 계절이 한 달쯤 이어진다면,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롭게 겨울을 보내고, 조급하지 않게 봄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빨리 피어버려 금방 져버리는 꽃들을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되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머뭇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진짜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된다. 그리고 머뭇은 아무도 모르게 봄 속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머뭇은 매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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