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너마저 비가 계속오기 있기없기!?
언제나 그랬듯이 파리에서 아흐레 동안의 '살아보는 여행'의 첫 시작을 위해 파리 주간 날씨를 검색했다.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기예보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9일 동안 단 하루, 내일만 비가 오지 않고 나머지는 전부 비가 오다니!
보름 간의 을씨년 같던 런던 날씨와 우비를 입고 몰아치는 빗줄기를 맞으며 떠나온 암스테르담에 이어 파리마저 8일간의 비 소식을 알리니 상황이 난감했다. 체력적으로 쉼이 필요한 내일인데, 비가 와도 상관없는 미술관 박물관을 제외하고 보니 맑은 날에 가면 좋을 일정은 파리 디즈니랜드만 남았다. 이건 뭐 해외여행을 다녀온 다음 날에 에버랜드 가는 셈이 되었다. 우선 서둘러서 디즈니랜드 입장권을 예매했다. 디즈니랜드는 꿈과 환상의 나라 디즈니랜드와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로 나뉘어있고, 하루 동안 두 개의 park를 다 돌아다닐 수 있는 1 day 2 park를 예매를 하였다.
디즈니랜드를 출발하는 날(20년 1월 29일), 프랑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이미 접한 첫째 아이는 사람이 붐비는 놀이공원을 간다는 것이 몹시 두려운 듯했다. 마스크를 쓰고 가면 안전하다고 하니 어느 누구도 마스크를 안 쓰는 시기였기에 우리를 중국사람으로 오해해서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다는 이유를 대며 불안함을 앞세웠다. 안타까운 일기예보를 이유로 강행할 수밖에 없던 파리 디즈니랜드 일정을 포기하기에는 둘째 아이가 너무 기대했던 것이었고 30만 원에 상당하는 티켓을 환불할 수도 없었던 노릇이라 무리해서 가기로 했다. 첫째 아이는 RER을 타고서 창밖만 바라보며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불안한 기색을 말없이 삭히는 중인 듯했다.
WALT DISNEY STUDIOS (Bd de Parc, 77700 Coupvray, France)
파리 디즈니랜드에 들어서자마자 첫째 아이의 걱정은 분명 기우였다. 날씨가 흐리기도 했고 주중이었기에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듯 첫째 아이의 표정이 살아난다. 놀이공원에 오면 하나라도 더 뽕을 뽑아야겠다는 신념으로 마음이 조급 해지는 법! 우선 우리는 2 park 중에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를 입장하기로 했다.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단연 우리의 마음을 심쿵하게 한 곳은 할리우드 타워였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엘리베이터 탑승을 종용했고 엘리베이터 안의 기다란 의자에 앉도록 안내를 받았다. 안전벨트도 허술하고, 왜 타야 하는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탔던 터라 그 어떤 기대감과 긴장감이 없을 찰나에 갑자기 아래로 뚝하고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 하며 심장을 쫄깃하게 해 주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소리를 꽥꽥 질러대었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탔기에 더욱 신났던 놀이기구였다. 다시 한번 더 타고 싶었으나 우리는 서둘러 다음 코스인 파리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이것이 지금도 제일 후회되는 순간이다.
배도 든든히 채우고 파리 디즈니랜드로 출발해본다.
DISNEYLAND PARIS (Bd de Parc, 77700 Coupvray, France)
파리 디즈니 성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는데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마냥 설레는 건 매 한 가지였다. 디즈니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거짓말 조금 보태어 몇천 장을 찍었다. (이 시간을 아껴 할리우드 타워를 한번 더 탔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다. 기승전 할리우드 타워)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디즈니랜드는 무엇보다도 퍼레이드 등 볼거리가 많은 편이었고, 일 년이 지난 지금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단연 일루미네이션이다. 디즈니 성을 배경으로 불꽃놀이라니! 서서히 날은 어두워지고 서둘러 일루미네이션을 보기 좋은 곳을 검색해서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일루미네이션 불꽃놀이는 눈 깜빡하는 시간 조차 아까울 정도로 최고였다. 디즈니랜드의 대표적인 OST 노래를 배경으로 우리의 혼을 쏙 빼놓았는데,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잔잔한 여운은 피곤함과 노곤함을 싹 씻어주었다. 둘째 아이는 계속해서 할리우드 타워를 타러 다시 파리에 와야 한다며 계속 재잘거렸고, 첫째 아이는 아침에 왜 나는 코로나를 걱정했을까요? 하며 무한반복 자책한다.
마스크는 얼굴이 시려서 쓴 거지 코로나 때문에 쓴 건 아니야!
그때의 마스크는 단지 프랑스의 쌀쌀한 밤공기에 감기라도 걸릴까 썼던 것이었는데 이렇게 마스크 없이 놀이공원을 다녀오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사진 한 장에 여운이 이렇게도 많이 남는 것은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이 너무 깊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