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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현 Sep 07. 2021

스물아홉에 본 것들이 마흔에 달리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오! 나의 두 번째 루브르 박물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둔 파리 뮤지엄 패스 실물을 받기 위해 메트로에 몸을 실었다. 이동하는 내내 아이들은 드디어 레이디 버그에 나오는 루브르 박물관 유리 피라미드의 실물을 본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을 입으로 쉬지 않고 표현했다. 그에 반해 나는 남편과 함께 십여 년 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해본 경험이 있었고 그 당시 유리관에 고이 모셔둔 '모나리자' 외에는 인상 깊은 작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와 광활한 공간에 너무 고생했었던 기억이 있어 이렇다 할 기대감은 없었다. 거기다 메트로에서 내려 야속하게 추적대는 빗속을 뚫고 파리 뮤지엄 패스 사무실을 찾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어 한참을 헤맸으니 그 마음 오죽했으랴.

파리 뮤지엄 패스 144h (한국에서 미리 결제하고 뮤지엄 패스 실물은 파리 현지 사무실에서 수령)
루브르 박물관 도착
루브르박물관 information &  clock room
오디오가이드 티켓머신에서 티켓을 결제하고 티켓을 보여주면 오디오가이드를 대여해준다
오디오가이드 €5

 루브르 박물관 입장과 동시에 수많은 인파를 보자마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얼른 information에 문의하여 clock room에 우산과 무거운 외투를 보관하고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했다. 아이들과 드디어 전시실 입장을 해보려고 하지만 40여 만점의 세계 최대 예술품을 소장한 세계 3대 박물관의 규모에 어떻게 잘 접근해야 할지 선뜻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지친 루브르 박물관의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오디오가이드와 루브르박물관 관람 작전회의


엄마표 유럽워크북_루브르 박물관


 그래서 우리들만의 효율적인 관람하기 위한 방법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아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우선 오디오 가이드에 있는 필수 감상 작품이 있는 곳을 집중 공략하고, 엄마표 유럽 워크북의 작품들의 답들을 함께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자! 호흡을 가다듬고 인파를 뚫고 들어가 보자!


사모트라케의 니케상
오디오북에 진심인편

 아이들은 게임기처럼 생긴 오디오북을 각자의 목에 야무지게 걸고 한 손에는 엄마표 유럽 워크북을 챙겨 <사모트라케의 니케상> 앞에 섰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계단에 털썩 앉아 오디오북에 귀 기울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묘한 기분이 올라온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무심하게 전시를 대했던 나의 20대가 부끄러워서였는지, 아이들과 함께 보아서 감회가 새로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집중해주는 모습이 고마워서 그런 건지 알 수 없는 기분에 벅차오른다.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높이 비상하려는 자세의 니케상을 보고 있자니
 20대에 본 니케상과는 사뭇 달리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인가?



발아프게 걸었던 루브르 박물관

 

 다음으로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렵게 찾아간 모나리자 앞은 이미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우리는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로 우리를 맞이한 모나리자를 가까이 마주하기 위해 긴 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모나리자 영접한 역사적인 순간!


엄마. 진짜 눈썹이 없었어요.

 삼엄한 경계 속에서 '눈치 보며' 모나리자를 감상하다니! 사진 찍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돌았고, 공장에서 물건 찍어대듯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이 상황이 참 안타까웠다. 진심을 다해 가까이 가서 오래 두고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모나리자를 지키는 담당자는 훠이훠이 손을 내저으며 그럴만한 여유는 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1차원적인 눈썹의 존재만 논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진짜 모나리자'의 하늘을 찌를듯한 도도함은 한국 전시에서 만난 '가짜 모나리자'를 순식간에 헤픈 여인으로 만들어버렸다.


하남문화예술회관 명화속과학체험전_2019.08 (의문의 1패)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오디오북은 부분부분을 자세하게 볼 수 있도록 잘 만들어졌다.
밀로의 비너스
조세핀 망토의 촉감이 느껴질 것 같은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엄마표 유럽 워크북과 오디오북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루브르 박물관 내에서 사람에 치이며 만보에 가까운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버거웠을 무렵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새로운 여유의 세계가 열린다. 아이들 또한 이 그림이 저 그림 같고 저 그림이 이 그림 같은 느낌을 받은 건지 창밖을 한참이나 바라본다. 하루 만에 다 볼 수 없는 규모인걸 어쩌겠니. 우리만의 관람규칙대로 굵직굵직한 작품만 보고 오디오북으로 내용을 이해했으니 여기까지 보는 걸로! 북적대는 곳에서 워크북 정리를 하지 못해 information앞 소파에 앉아 마무리하고 피라미드 실물을 보기로 하고 나선다.



뭐지? 루브르 박물관 안보다 밖이 더 즐거울게 뭐람?


 루브르 박물관을 나오며 생각했다. 배경지식이 너무 없었던 스물여덜인 내가 루브르를 다녀왔을 때는 유럽여행 유경험자 증명이 되는 인증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알맹이가 없는 여행을 했던 것 같고 마흔에 아이들과 함께한 두 번째 루브르는 속이 꽉 찬 느낌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이 있듯이 20대 그 당시 나는 유럽 미술과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고 그만큼 보이는 시야의 스펙트럼이 좁았기에 느끼는 바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지금의 나는 아이를 통해 많이 성장한 마흔 살 엄마 사람이라는 것. 이것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강력한 이유가 된 거라 짐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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