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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 Sep 18. 2021

4컷 생각 #88 임신은 처음이라16 - 태교는

쉽지 않아

태교에 관심이 많았다. 뱃속에 있을 때, 몸의 기관들이 형성될 때 적절한 자극을 주면 좀 더 잘 발달할 거 같았다. 그래서 태교 책도 보고 태교 영상도 찾아봤다.


걷고 운동하며 양수를 흔들어주고, 청각이 발달할 때쯤 음악을 들려주거나 대화를 해주고, 시각이 발달할 때쯤 햇빛을 쐬어주거나 불빛을 비춰주면 좋단다. 엄마가 스트레스받지 않게 해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안 나오면 제일 좋고. 이것들이 다 효과가 증명된지는 모르겠지만 좋다니깐 해봤다.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영어 음악을 틀어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몸짓을 하고 춤도 추고 놀았다. 다행히 원래 내가 그걸 좋아한다. 클래식과 동요도 하루 한 곡씩은 틀었다. 동요는 소화시킬 때 날개뼈를 모으며 등을 움직이는 등 박수 운동을 하며 움직일 때 해봤다. 클래식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오래 듣지 못했다. 그래도 디즈니 음악이랑 동요로 움직이기도 하고 듣기도 하니깐 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불빛을 비추는 건 나중에 태아가 빛을 볼 때 해볼 수 있다길래 휴대폰 손전등 기능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걷기 운동은 포인트를 주는 어플이 있어서 하루 8000보를 걸어서 포인트도 얻고 집 주변을 산책도 했다. 임산부 발레도 수강해서 매일 꾸준히 하고 있었다.


남편은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해 이쁜 말도 많이 해준다. 입덧 때문에 잘 먹지 못하면 먹을 수 있는 걸로 출근 전에 간단히 아침도 차려주고 가고, 다녀와서 저녁도 챙겨줬다. 음식을 잘 챙겨 먹이려 하고 내가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서 시무룩하거나 힘들어하면 긍정적인 언어로 바꿔줬다.


평소 나는 밝은 편이라, 안 좋은 일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넘어가는 편이다. 그런데 그게 내 한계를 넘어서 감당 못할 상황에 빠지면 힘들어하며 갑자기 부정적으로 바뀐다. 그걸 잘 알고 남편이 내 마음을 행복하게 바꿀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 스트레스가 없었고 행복했다. 좋은 호르몬이 뿜 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근데 정작 청각과 시각이 완성된다는 시기에 누워서 지내야만 한다니! 태교 하려고 공부도 다 해놓고 습관도 만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워버려서 '어떡하지.' 하며 생각 회로가 멈추며 모든 의욕을 잃었다. 사실 음악 듣기나 대화,  보여주기 다 누워서 할 수 있지만, 걷지 못하고 운동을 못한다는 것으로 멘붕이 와버린 거다. 옆에서 보면, 누가 봐도 '누워서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어!'라고 할텐 내 머릿속에는 '이걸 못하는 대신 이건 할 수 있어!'라는 데이터가 들어오지 않았다. 긍정적이고 발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날 도와주러 왔다가도 어떤 벽에 가로막혀 튕겨져 나간 것처럼.


모든 걸 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누워서 아무 의욕 없이 영상만 봤다. 드라마와 예능을 봐도 즐거워서 본다기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보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멘붕 기간에 의욕 없이 영상만 보는 나를 이해해줬다. 그거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태교랍시고 하고 있던 것을 하지 못했지만, 남편은 태교를 계속해줬다. 퇴근하고 와서 튼살 크림도 발라주고, 나랑 대화도 하고, 태교 책을 매일 읽어줬다. 그거라도 해줘서 나는 태교에 대한 부담은 줄었다. 아, 게다가 집안일도 전부 남편이 다 해줬다. 내가 움직일 수 없으니 할 수가 없었다. 일도 하고 와서 집안일까지 다 해주고 힘들 텐데 너무 고마웠다.


수축으로 못하는 게 많아져서 힘들다고 말한 어느 날, 남편은 말했다.


"집에 있는 게 좋아? 아니면 입원이 좋아?"

"집이 좋아! 훨씬 좋지! 입원하면 마스크도 계속 써야 하고 조용히 해야 해서 대화도 쉽게 못하고, 오빠도 못 보고, 링거도 맞아야 하고 병실 침대에서만 생활해야 하잖아. "


"그렇지? 그럼 우리 집은 1인실이네. 병원 특실에 와있다고 생각하자. 눈에 보여도 집안일할 생각 아예 말고 병원이라 생각해. 수축 관리하는 것만 하는 거야~"


"그리고 태교는 이것 저것 하는것보다 엄마가 행복한 게 젤 좋은 걸 거야! 그러니 이것저것 하려고 하거나 못해서 스트레스받지 말고 맘 편하게 지내~"


그 말이 어찌나 고마운지. 그 덕에 마음이 금방 좋아진 거 같다. 그렇게 2주 정도가 지나고, 집에 누워서 의미 없이 영상만 보지 말고 '누워서라도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야지!'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게 꼭 태교가 아니라도 말이다. 그렇게 다시 긍정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삐뽀삐뽀 119 소아과 p.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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