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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운 Oct 17. 2020

4컷 생각 #20 지각쟁이

역시 손해를 겪어봐야 고쳐짐

나는 학창 시절에 모범생이었다. "이 반의 모범생은 누구야?"라고 하면 그 후보 안에 늘 들어갔다. 공부를 특출나게 잘해서는 아니었다. 공부를 나보다 더 잘하는 학생은 있었다. 그것보다는 조용하고 소심해서 행동이 튀지 않고,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학생이었다. 그렇게 모범생의 범주에 들어 있었다. 단, 지각하는 것만 빼고.


잠이 너무 많아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노력해도 잘 안됐다. 7시 50분까지 학교에 도착해야 하는데 7시 30분에 일어나는 날이 많았다. 이 닦고 세수만 하고 머리도 안 감고 20분 동안 열심히 뛰어서 갔다. 택시 타면 10분도 안 걸리는데 탈 돈은 없었다. 맨날 아침에 못 일어나서 그때부터 전날 밤에 머리를 감았지..


잘 뛴 날은 50분에 교문을 다행히 통과하고, 아닌 날은 55분이나 8시에 도착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최소 1회는 지각을 해서 오리걸음 벌을 받았다. 그렇게 벌을 받아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약속이 아니면 그나마 지킬 수 있었다. 이동 거리만 잘 계산하면.


그렇게 지각을 고치지 못하고 대학을 갔다. 대학교를 집에서 먼 곳에 가게 되었고, 알바로 월 20만 원 정도 벌어서 생활비로 사용하는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자주 가지 못했다. 그래도 명절과 방학 때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기 위해 끊은 표를 지각 습관 때문에 여러 번 날렸다. 어떤 날은 아침 비행기가 싸다고 7시 표를 끊어놓고 일어나지 못해서 놓쳐버리고, 또 어떤 날은 가는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 날려버렸다. 여러 번 그런 일이 있었다. 내 나쁜 습관 때문에. ㅠㅠ 자고 일어났더니 날아가버린 비행기 값은 환불이 안되었고, 늦은 건 추가 요금을 내고 바꿔서 다음 비행기를 탔다. 제때 도착했으면 손해보지 않았을 돈이었다.


빈도가 많아지니 월 20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야 하는 나에게는 큰 출혈이었다. 더 이상의 손해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을 다짐하고서야 고쳐졌다. 이제는 열차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출발 시간을 일부러 더 빨리 기록해두고 30분~1시간은 여유 있게 간다. 가서 기다리는 게 훨씬 나으니깐.


주변에서 고쳐야 한다며 혼내고, 벌주고 잔소리를 해도 스스로 겪거나 깨닫고 다짐하기 전에는 바뀌지 않더라. 누군가의 어떤 점이 바뀌길 바래도 스스로 깨닫고 고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보다. 더 빨리 자신이 손해 보는 상황에 닥치게 하면 되려나? 나도 만약 고등학교 때 내가 정신을 차릴 만큼의 상황에 닥쳤으면 더 빨리 고쳤을까? 궁금하다. 어떻게 했으면 그때 지각 습관이 고쳐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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