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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Dec 15. 2021

슬기로운 코로나 회피 생활

 


 반년이 넘도록 글을 쓰지 않았다.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건 일상에 대한 나의 무심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느덧 마스크를 쓰는 생활에 익숙해졌고, 사람들과의 교류가 자연스레 단절되어 가족끼리만 지내다 보니 모든 것에 무관심해졌다. 아이 학업 때문에 그저 동네 근방의 확진자 여부만이 궁금하고 걱정될 뿐, 타인에 대한 궁금증 같은 것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다들 각자 도생하기 바쁘고, 생존 앞에선 내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관대함이나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인관계도 겪어보니 다 시절 인연일 뿐이었다. 죽고 못 살 것 같던 친구도 다 각자 살기 바빠져서 연락하는 것조차 민폐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생활방식도 다 다르기 때문에 막상 연락해봤자 할 말이 없다. 공통점이나 관심사를 도통 공유할 수가 없으니, 대화 소재 고갈로 인해 길어지는 침묵이 싫어 연락하지 않는 편이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 삶에 집중하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다. 어쩔 수 없이 겪고 있는 고립에서 오는 외로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차피 내 인생, 내가 사는 것이니까.


  한 동안 잠잠했던 메니에르가 또 말썽을 부리지만, 오히려  예전처럼 부정 속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체념이 빨라졌다고 해야 할까. 어차피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은 매달린다고 달라지지 않으니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게 된다. 코로나 시대가 가르쳐준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애쓰지 않고, 발버둥 치지 않고, 포기가 빨라지며,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조금은 외롭지만 그 안에서 단단해지는 삶-


 한적한 시공간에서 하는 산책이 그나마 삶의 유일한 낙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마음을 비우고 정리하는 것에 치중해 있다. 단풍 낙엽이 지듯, 모든 것은 유한하니 속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우울감도 중독이었고, 과거의 상처들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과 무관하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다. 어차피 코로나 시대에 죽음 앞에서 인간의 모든 갈등은 티끌조차 아니기 때문에, 온전한 '나'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감정이 메마르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코로나 시대에 지배당하면서 잃지 말아야 할 삶의 가치는 마음 관리인 것 같다. 육체적 건강도 물론 중요하지만 세상의 모든 곳에 벽이 생기는 마당에 마음마저 무너져 버리면 삶을 포기하고 싶어 질 테니까. 그래서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육체적 활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조건은 있다, 밀폐된 공간이나 사람이 몰리는 곳은 절대 가지 않는 것- 타인에게 민폐를 끼칠 순 없으니.


 그래서 미세먼지가 심한 오늘도 마스크를 단단히 고정시키고 밖으로 나가 걷는다. 걸을 때만큼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테이크 아웃해서 먹는다. 이 정도면 훌륭한 외출이지.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운다는 캔디는 안 보이는 곳에서 울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울지 않은 척,  입술을 깨물며 견디고 버텨내는 인내를 배웠을 것이다. 코로나 세상이 주는 가르침은 결국 인고의 시간을 한계 없이 잘 버텨낼 수 있는가 라는 지상 최대 미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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