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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May 29. 2021

펫로스 증후군


 뽀삐가 떠나고 죽지 않을 만큼 아팠다. 현재는 정신적으로 공허해서 아프지만...

뽀삐가 떠난 직후, 내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었다. 두 번의 신우신염으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고 설상가상 여러 검사를 받다 이상한 위치의 물혹과 폴립을 발견했다. 그것도 모자라 뽀삐와 마지막으로 함께 살던 집에 발도 디딜 수 없어서 이사를 나와버렸다. 상실의 고통은 심장을 수십 번 칼로 찔러대고 도려내는 느낌과 다름없었다. 마치  비루한 몸뚱이가 어디 아플 대로 아파봐, 그래서 차라리 따라가버려 라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만 같았다.


 자리에서 주저앉아 일어날 기운조차 없던 아이를 보곤 주변에서는 편히 보내주라며 안락사를 권하였지만, 애초에 뽀삐는 유기견 센터에서 안락사를 앞두고 급히 내가 입양했기 때문에 차마 그 최악을 내 손으로 결정할 순 없었다. 데려올 때 뽀삐에게 굳게 약속했었고, 엄마인 내가 그 약속만은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서로 힘든 시간이었을지라도 자연사를 택했고 아직까지도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의 매 순간 곁을 지켰다는 것에 안도했고, 그 기억으로 죄책감을 덜어 내어 상실과 공허의 시간뎌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니까.


 핏기 없이 뼈가 다 드러난 몸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어보곤 마지막을 직감했었다. 간신히 붙어있던 숨은 슬퍼할 엄마에게 끝까지 주고 간 따뜻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했다고, 고마웠다고, 이제 그만 놓아줘도 된다고- 내게 해주는 서글픈 위로였을 것이다. 그 아이는 늘 자신보다 나를 더 위해주던 천사였으니, 오히려 위로를 받는 건 늘 내 쪽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노화로 인한 치매가 심해지니 배변 조절이 안 돼서 기저귀를 채우고, 집 여기저기 패드를 깔아놓고 바닥 닦는 일이 불과 몇 개월 전 일과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펑펑 울며 뽀삐에게 모진 소리도 했었다. 그게 그렇게 한으로 남아 후회의 화살로 돌아온다. 뒤늦게 깨달은 멍청한 나란 인간, 있을 때 잘할 걸 이란 말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던 내가 매일같이 네 사진을 보며 한심해하던 말을 내뱉고 있으니...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내 새끼는 이미 저 하늘의 별이 되어 내 옆에 없는데.


 너에게 자유를 준다 하면서 데리고 왔건만 오히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마지막 산책도 못 시켜준 것, 네가 아프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재운 것... 나는 정말 나쁜 인간이구나 싶어 속죄하는 마음으로 다른 강아지들에게 잘해 주고 싶지만, 아직 이 마음이 뽀삐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그냥 더 아파하고 슬퍼해서 네 이름 두 글자에 왈칵 눈물 흘리는 날의 횟수가 줄어들 때를 기다리는 것이 우선일 것 같은데, 그런 날이 죽기 전까지 오기나 할까 싶고...


 그깟 강아지 한 마리 죽었다고 온통 앓는 소리를 낸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사람 자식 하나, 강아지 자식 하나, 도합 자식이 둘이었는데 하나를 잃었어요, 당신 같으면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어요? 그저 시간이 흐를 때까지 기다리고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거지.


 슬픔의 크기가 도대체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 되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고 속만 더 쓰릴뿐 그런 소모적인 언쟁이 다 무슨 소용인가, 뒤돌아서면 각자도생인데.


 뽀삐야, 하고 부르면 경쾌한 발톱 소리로 품 안에 걸어 들어올 것 같은데 정적만이 감싼다. 천둥번개라도 치는 날엔 바들바들 떨면서 침대 밑으로 들어올 것 같은데 이젠 내가 놀라서 잠이 쉬이 들지 못한다. 새벽에 일어나 물을 마시다 바닥 핥는 소리마저 그리워지는 건 분명 한도 초과한 그리움 탓일 테지.


 머릿속 필름들을 하나둘씩 꺼내어 너의 모습들을 다시 보기 하는 것이 요즘 나의 하루 일과라는 걸 너는 알까. 남편과 아이가 자리를 비운 고요한 아침에 작은 온기 하나 비어진 자리가 커다란 싱크홀같이 느껴진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곤 손가락 사이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게 요즘 내 하루의 시작이다.


 맹목적인 사랑이 사라진 자리의 타격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피해를 경험할 수 있다. 끝도 모를 깊숙한 구렁텅이에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감을 얻고, 후회가 막심하며, 아무 의욕도, 흥미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이 지속된다. 이 정도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의욕상실의 굴레를 썼다.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지만,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이것은 마음의 병이고 치료가 시급하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하다.


 난 지금 매우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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