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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Nov 17. 2016

도시 여자의 제주살이

내가 제주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라

 나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제주로 왔으니, 청개구리마냥 선조들 말씀과 다르게 행동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선택이 틀렸는가? 단지 각자 삶의 방식에 대한 차이가 존재할 뿐, 사람 사는 곳은 다를 게 없다.



 한창 제주에서 한달 살기와 같은 제주살이 열풍이 불었다. 도시에서의 삶이 지친 사람들에게 불어닥친 일종의 붐과 같았다. 현재도 일주일에서 2주 정도 장기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힐링의 장소로서 최적화된 곳이 제주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하다. 나 역시도 그리 생각하고 여행하다 이곳의 아름다움에 홀려 눌러 앉아버린 경우니까.


 서울에서의 삶은 숨막힐 정도로 내 목을 조여왔다.


 취업 준비생이었던 나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 늘 되물었다. 때론 타인의 삶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자괴감마저 들 때도 많았다. 대기업에 기계적으로 써 내는 자기 소설과 국가 공무원 시험까지 병행하면서 줄곧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일주일 넘게 신발이란 것을 신고 나가본 적도 없이 살다 보니, 이렇게 살다가는 자살 시도라도 할 것만 같아서, 크나큰 배낭을 배고 주머니를 탈탈 털어 제주로 훌쩍 떠났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단 발악으로 선택한 최후의 방법이 제주 여행, 목표는 한라산 등반이었다.


 8시간을 미친 듯이 앞만 보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나는 다짐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이곳에서 살겠다고. 더이상 아무 욕심도 내지 않고, 타인과 비교하는 삶 말고, 나에게만 집중하며 오롯이 내 인생을 살겠다고.



 그렇게 제주는 포기가 안 되는 곳이었다. 연고도 없이 남편과 혈혈단신 정착한 이 섬은 보물섬과도 같았다. 어디에 둥지를 틀었든 30분 이내로 오름과 바다를 만끽할 수 있으니 자연친화적인 삶의 보금자리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변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가족에게 짜증섞인 말투로 대하며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줬던, 그렇게 근심과 걱정에 휩싸여 부정적이었던 내가 조금씩 긍정적인 사고를 자연스레 해 낸다는 게 스스로 대견하기까지 하다.



 겨울이 되면 제주 특유의 스산한 공기가 무겁게 감싸지만, 척박한 계절 속에서도 선명한 분홍빛을 틔우며 정답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동백꽃이 우리를 맞이해준다.


 전국적으로 최저 임금을 받는 곳이 제주이긴 하지만, 적게 벌어 적게 쓰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는 곳은 다르지만 저마다 작은 텃밭을 일구시며 자급자족하고 계신 양가부모님 덕분에 여러 농작물들과 김치는 조금 손 벌릴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시부모님께서 지난 주말에 직접 담그신 김치가 택배로 왔다. 어제 보내셨다는데 아무리 먼 섬 제주라도 익일 택배로 보내니 이젠 하루면 온다. 참 좋은 세상이다. 이렇듯 제주에 살아도 불편한 게 하나 없다. 오히려 지나친 건축 개발 호재와 교통체증과 같이 번화하려는 조짐에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아직까지 나는 제주가 좋다. 투박한 사람들의 사투리마저 정겹다. 멋들어진 카페들이 여기저기 생겨나면서 늘 여행자 기분을 만끽하며 살 수 있는 것도 감사하다.


 그렇게 나는 제주에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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