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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Jan 23. 2017

일곱 번째 결혼기념일

눈과 함께


 작년 1월 23일, 그리고 오늘도 눈이 내렸다. 2011년 1월 23일, 우리의 결혼식이 있던 날에도 눈이 내렸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눈이 휘몰아쳐 내릴 수 있었는 지 궁금할 정도로.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펑펑 쏟아져 내려 무릎까지 쌓였던 눈을 보며 흡족해 하셨다. 결혼하는 날 눈이 내리면 잘 산다는 말이 있다고 하시면서.


2016년 1월 23일 제주 우리 동네 설경


 극히 일부지만, 몇몇 사람들은 우리가 시대에 비해 너무 이른 나이에 식을 올린다며 신부가 혼전 임신을 했다느니, 뭔가 숨기는 것이 있을거라느니, 연예인들이나 겪을 법한 루머가 내 귀에까지 들렸으나 쿨하게 무시해버렸다. 인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과 머메이드 드레스를 위해 격한 다이어트까지 했는데, 임신은 무슨.


 사실 대책 없이 순도 100프로의 마음으로 결혼을 결심했다. 신혼 초, 혈투까진 아니더라도 철 없던 생각에 시시때때로 이혼을 입에 올리며 남편을 닦달하기도 했지만, 나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했던 그 분은 보살같은 마음가짐과 태도로 굽히고 또 굽혀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같은 성격의 여자와 살아주는 남편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활어회같은 파닥거림으로 감정기복이 극심했던 나를 유일하게 달랠 수 있었던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남편 뿐이다. 친정 부모님께서도, 심지어 나 자신도 그걸 잘 알기에 일찍이 가정을 꾸린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한 때는 혼자 편히 내 빨래만 겨우 돌리면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떠나고 싶을 때 혈혈단신 어디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심히 갈망하기도 했다. 애엄마가 된 지금도 이따금씩 그런 자유에 대한 목마름을 느끼기도 한다. 싱글인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자신만을 위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유 모를 시기심을 느끼기도 한다, 아주 가끔.


 그럴 때면 늘상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가족은 선물이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쉽사리 떠났다가 괴한이라도 마주한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추운 겨울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어느 단란한 가족이 외식하는 모습을 우연히 창 밖에서 보게 됐을 때, 정갈하게 차리려고 노력했던 상차림 위로 웃음과 짜증이 오가던, 따뜻한 우리 집이 그리워질텐데. 그렇게 정처 없이 거닐다 길 한복판에서 비명횡사라도 하면 내 인생은 정말 남는 것도 없이 슬픔만 가득하겠지. 뭐 이런 극단적인 상황들을 머리 속에서 계속 곱씹으면서.


 떼쓰기가 하늘을 찌르는 아들내미를 진정시키다 이내 포기하고 넋을 놓으려 할 때쯤 나의 구세주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서프라이즈 드라이 플라워 한 다발과 조각케이크가 담긴 상자를 건내주었다. 감동이 목 끝까지 차올라서 고맙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나 대신 아이를 달래고 있는 남편을 돌이켜 세워 안아보았다. 춥디 추운 날씨에 새벽에 일어나 식구를 먹여 살리겠다고 출근길에 오르는 일개미 남편이 유난히 안쓰럽고 고마웠다.


 양보나 배려, 기다림같은 건 나와 거리가 멀었는데, 7년을 부대끼고 살다 보니 육아가 지치다가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을 나가는 남편을 생각하면 이마의 주름이 저절로 펴진다.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기에 서로를, 우리를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해 꽃다발을 사러 가는 남편의 마음은 어땠을까? 근데 장미꽃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뻔하지 않아서 내 취향 저격.


 아이를 재우고 나올 남편과 조금 이따 달달한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대화꽃을 피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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