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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민 Mar 20. 2017

마이 웨이

말 조심


 삶의 가치에 대한 기준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돈이 전부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오장육부, 사지 멀쩡한 게 제일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랑해'를 수 만 번 외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연애와 사랑이 최고의 가치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이 세상을 내 손 안에 쥐고 흔들어 봐야 사는 맛이 난다며 권력과 명예욕이 우선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느 하나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개인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그저 나와 다를 뿐, 그 차이를 존중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중점을 두고 있는 가치 기준이 절대적일 순 없으니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듯 하다. 그건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무관심하다면 어찌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또한 당연하다. 세상사에 관심을 가져야 자국 현실이 어떤지, 앞으로 경제 사정은 어찌 돌아갈지, 어떤 이가 말을 함부로 해서 구설수에 올랐는지, 그래서 대처 방법은 무엇인지, 관심을 갖고 알아야 인생사를 터득할 것이 아닌가.


 문제는 지나쳐서,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서, 하나의 이목을 끌만한 자극적인 이야기거리를 물어서 씹고, 뜯고, 즐기고, 왜곡한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타인에게 관대하지 못 할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걱정 정도만 하면 될 것을.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쓴 소리와 쌍욕은 엄연히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그래도 인생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반면, 후자는 그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어마무시한 상처덩어리를 투척해버리고 끝난다는 것이다. 싫은 데 이유가 없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되는 경우다. 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걸 굳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정색하며 욕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저 내 갈 길 가는 게 득이다. 아, 물론 내 삶에 심각하게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들에게 만큼은 가운데 손가락 한 번 정도 날려주고 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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