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비가 그치고 해가 쨍하니 떠오른 어제,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로 꾸며진 관광지에 다녀왔다. 제주에서 육지로 떠날 준비를 하는 우리 가족에겐 나름 버킷리스트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제주를 떠나더라도 오롯이 아이만을 위한 관광지 한 곳은 가보고 떠나는 것이었다. 늘 게으름에 허우적거리는 엄마이지만, 작심을 하고 떠나는 마음은 내심 기뻤다.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상상에 설렘도 조금 더해진 듯 했다.
하지만 순탄한 육아는 없다고, 시트콤이 따로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차 안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자마자 도착한 새로운 장소에 아이는 기겁을 하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평소에 죽고 못 살 것 같이 찾아대는 만화 캐릭터를 눈 앞에 놔두고 꺼이꺼이 숨 넘어가듯 울어 젖히는데, 우리 부부는 어이가 없다 못 해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었을까? 아직 말문도 트이지 않은 아이는 앞 뒤 사정 볼 것 없이 울어대기 바빴고,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으려 했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어르고 달래다가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30분을 넘게 울기만 해서 창피한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숨고만 싶었다.
가까스로 진정된 아들내미 손을 잡고 한 걸음씩 나아가려 했다. 칭얼거림은 하늘을 찔렀고, 캐릭터 동상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했으며, 엄마의 원피스 자락이 찢어질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꽉 붙잡곤 놓아주지 않았다.
부모의 인내심을 시험하는건지, 다른 아이들 노는 것을 쳐다만 보고는 휙 가버리는 것을 반복했다. 보다 못 한 남편이 슬라이드라도 시켜볼까 하고 썰매를 끌고 와서 억지로 태워보았지만, 결국 아이는 또 울음이 터져버렸다.
삼만원 넘는 돈이 아까워서 차마 나가지도 못 하겠고, 카페에 가서 목이나 축이고 집에 가자 해서 일단 야외 테이블 빈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런데 인생 살아봐야 안다고, 반전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큰엉 올레길 아래로 바다가 쭈욱 펼쳐지면서 시야가 확 트이는 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짜증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아이도 간식을 먹으니 금새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과 나란히 앉아 푸르른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어딘 지도 모를 풍경을 바라봤는데 그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때론 인위적인 공간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자연이 우위라는 것에 우리는 부정할 수 없었다.
모두가 힐링의 시간을 갖고 나니, 아이는 그제서야 적응이 됐는지 캐릭터에 다가가 만져보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 수 없었던 남편은 미친듯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바라만 봐도 흐뭇해지는 광경에 나 역시도 긴장이 조금씩 풀려갔다.
폐장시간이 임박해 오면서 겁 먹었던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온 동네방네를 누비고 다니는 천방지축으로 바뀌었다. 우리 부부도 덩달아 신이 나서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이리저리 쫓아다녔다. 그러다 많은 가족들을 지나쳐가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 아등바등 살아가면서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삶의 이유가 되는 것은 가족이구나, 가족 뿐이겠구나.
처음에 이 곳을 들어섰을 땐, 나도 여지없이 부모가 되서 이런 곳이나 다니면서 아이만 쫓아다니는 신세가 됐구나, 하며 한탄스러운 마음에 크나큰 날숨만 내쉬기 급급했는데, 그건 정말 바보같은 생각일 뿐이었다. 나의 평온한 일상이 누군가는 간절히 바라는 삶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면서 나의 어리석음을 꾸짖었다.
괜찮은 엄마가 되기엔 한참 멀었다.
좋은 사람 곁엔 늘 좋은 사람들이 머문다고 하는데, 아이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