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니 시간이 더 잘 가는 것 같다. 벌써 입원 셋 째날이라니... 그것도 이제 다 갔다.
나는 이곳에서도 육퇴를 했다. 육퇴를 하면, 하루는 끝난 셈이지.
셋 째날이 둘째 날보다 훨씬 수월하게 지나갔다. 나도 아기도 이곳에 적응을 한 것일까?
사람을 학습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제보다 더 나아진 오늘에 감사함을 느끼며 일기를 적어본다.
우선 둘째 날은 정말 너무너무 힘이 들었다. 입원해있으며 온갖 생각이 다 들었으니, 아기 아빠와 함께 입원을 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까? 독박 육아가 이런 것인가?
이곳에서의 둘째 날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코로나보다 힘든 육아'
병원에선 내 증상에 맞춰 약을 처방해준다. 다행히 나는 약을 먹으면 증상이 가라앉곤 한다. 열도 이제 그렇게 오르지 않아 아침에 해열제를 한 번 먹은 뒤로는 위장약과 콧물 가래 삭이는 약 정도만 먹었다.(그리고 뭔가 하나 먹고 있긴 하다) 두통도 신기하게 셋째 날은 가셨다. 세상 편하게 주는 밥 먹고, 청소도 안 해도 되고 코로나란 사실만 빼면 여유로웠을 것 같은 환경이 다 갖춰져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날 코로나보다 더 괴롭게 하는 것이 바로 육아다. 그것도 독박 육아. 갇힌 곳에서 아무것도 없는... 고작 아기 책 3권과 강아지 인형, 그리고 작은 나무 자동차 두 개가 꼴랑 다다. 그래서 어제 쿠팡으로 아기 장난감을 배송시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장난감은 저녁쯤 병원에 배송되었다고 나오지만 아직 병실에 오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하루를 참 잘 보냈다. 그 이야기를 짧게 해보려 한다.
어제도 저녁 9시 전, 잠든 아기는 오늘 아침 7시까지 푹~ 잘 잤다. 병원은 어찌 보면 집보다 육아에 좋은 환경인 듯하다. 티브이를 켜는 사람도 없고, 아기가 도저히 저녁에 못 잘 이유가 없다. 혹자는 음압 병동을 유지하는 기계가 시끄러우니 꼭 귀마개를 지참하라고까지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은 백색소음은 없다. 당연히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병실은 고요 그 자체다. 8시부터 불을 끄고 눕혀도 아기가 침대 밖으로 탈출하지 않았다. 낮잠을 푹 자서인지 졸려하지 않았지만, 1시간 동안이나 침대에서 그저 스스로도 자보려는 듯 깜박깜박하고 데굴데굴하다 9시경 잠이 들었다. 막막하기만 했던 수면교육이 코로나로 입원한 병원에서 해결이 되다니. 역시 수면교육의 9할은 환경 조성인가 보다. 집에 돌아가면 과연 이게 잘 유지될지 의문이지만, 꼭 유지하고 싶다. 삶이 쾌적하다.
간식으로 먹은 것들. 초코칩은 이전 계시전 확진자분이 주고가심...
오전에는 역시 창밖 주차장 뷰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잠시 너무 힘들 땐 타협도 하고 뽀로로 노래 하나를 보여줬다. 슈퍼영웅 뽀로로~ 어쩜 그리 재밌던지, 내가 더 다시 보고 싶어 졌다. 아기는 7시 조금 넘어 우유를 마셔서 그런지 8시 조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나도 굳이 먹이려 하지 않았고, 다급하게 내 밥만 조금 욱여넣고 아침을 마무리했다. 부족한 밥은 대신 전날 쿠팡 배송으로 받았던 파인애플 바로 대신했다. 아, 전날 저녁에 나온 간식 소보로 빵도 반개 같이 나눠먹었다. 내가 있는 포천병원은 저녁에 꼭 간식이 같이 나온다. 저녁 6시 밥을 먹고 나면 다음 밥은 아침 8시인지라 텀이 길기 때문인 것 같았다. 물론 나는 하드 한 육아로 꽤나 질 좋은 숙면을 했기에 먹을 새가 없었다.
어영부영하다 보면 금방 점심이 돌아온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어서인지 점심은 아기도 나도 엄청 배부르게 잘 먹었다. 20개월인 아기는 이제 1시에 낮잠을 청한다.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누우면 딱이다. 낮잠도 눕자마자 10분도 안돼서 재우는 데 성공했다. 나도 피곤해 같이 잠이 들었는데, 20 분자고 일어났다. 요 며칠 코로나 확진이 된 후로 못했던 일을 바쁘게 처리했다. 주로 블로그 글쓰기. 다 쓰고 나서도 아기는 아직 꿈나라였다. 신나서 콘푸로스트도 타 먹었다. 아기가 깰까 봐 굉장히 슬금슬금 움직였으나, 다 먹고 뒷정리까지 하고 나니 아기가 깼다.
그렇게 3시, 아기 간식 타임이다. 방울토마토를 몇 알 씻어 주었더니 침대에서 혼자 잘 먹었다. 이제 반복되는 일상, 시간과의 전쟁이다. 나를 안으라는 아기의 손에 이끌려 아기를 안고 병실 곳곳을 돌아다닌다. 아기는 손가락 하나와 '저기'라는 말 한마디로 날 요리조리 움직이게 만들었다. 확실한 건 퇴원했을 때, 자동 다이어트가 돼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창밖 풍경구경도 하고, 돌아다니고, 조심스레 숨바꼭질도 좀 하다 보면(주로 이불 안에 아기 숨겨줬다 찾아내기 정도) 6시 저녁시간이다. 또 밥이다.
오늘의 사단은 저녁시간에 났다. 순조로웠던 하루, 나 스스로도 자신만만해졌던 것 같다. 점심도 잘 먹었으니 저녁도 잘 먹을 수 있어. 큰 오산이었다. 아기는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거부했고, 이것은 정말 큰 일이었다. 아기가 잘 못 먹어서 큰일? 아니다. 아기는 자기 밥만 다 먹으면 내가 밥 먹고 있는 꼴을 못 본다. 결국엔 테이블 위를 오르락내리락 난리를 치다가 닫아놓은 국통을 어떻게 열어 엎었다. 방수시트 덕분에 국물이 내 바지로 스며들었다. 먹기를 중단하고 아기를 옆 침대로 옮겼다. 아기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알았는지 얌전하다. 휴지를 엄청나게 뜯어 자리 정리를 대충 한 뒤 집에서 챙겨 온 김을 꺼내 밥을 먹였다. 아기와 함께 코로나로 입원한다면, 김을 꼭 챙기시라. 김은 치트키다.
식단이 꽤 잘나온다. 아기를 피해 바닥에 내려놓고 먹음 흑흑
밥을 다 먹고 내친김에 화장실로 같이 가 씻었다. 머리도 감고, 더러워진 옷도 빨았다. 여기 온 뒤로 매일 밤 빨래를 하고 있다. 물론 힘들어서 아기 빨래만 손으로 하고 수건이나 내 옷은 발로 밟아버린다. 그리고 가습기 대신이라며 침대에 걸어두고 자는데, 다음날이면 신기하게 수건도 거의 다 마른 상태로 변신한다. 그렇게 빤 수건을 오늘 다시 쓰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잘 빨래가 된 건가? 잘 말려진 건가? 코로나로 잃은 후각 덕에 걸레 냄새를 못 맡고 세수한 얼굴을 걸레 수건으로 닦고 있는 건 아닐지 매우 궁금하다. 이것만 궁금한 건 아니다. 뭔가 전날이나 전전날 받은 음식을 먹으려 할 때도 궁금하다. 상하면 냄새가 바로 날 텐데 냄새를 맡지 못하니 괜찮은 걸까? 의문을 품고 그냥 먹고 있다. 새삼 느끼는 후각의 중요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