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질문은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다 준다.
몇 달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연애프로그램이었고, 출연하기 전에 방송국에 가서 직접 작가들과 사전미팅을 한 후 출연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었다. 마침 여자친구가 없었고, 방송을 나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었기에 흔쾌히 사전미팅을 해보겠다고 얘기했다. 주말에 떨리는 마음으로 방송국에 갔다. 방송국은 처음이었기에 긴장이 많이 됐고, 나에게 연락한 작가님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하니, 1층으로 마중을 나오셨다. 나는 미팅을 하면 많아도 2명 정도겠지 싶었는데, 미팅장소로 들어가니 웬걸, 10명이 넘는 작가님들이 방에 계셨고 그 중간에 날 앉혔다. 굉장히 긴장이 되고 당황스러웠다. 작가님이 처음에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저희 프로그램 보셨나요?’
사실 프로그램을 보지 않았고 그저 재밌을 거 같아서 사전미팅에 온 거라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작가님들 모두가 약간 실망한 제스쳐를 취하셨다. 그리고 질문하셨다.
‘그럼 저희 프로그램에 왜 나오시고 싶으신가요?’ 나는 대답했다. ‘여자친구가 없고 연애도 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러자 작가님은 내 프로필을 쭉 보더니 이렇게 얘기했다. ‘젊은 나이에 책도 내고 강연도 하시고.. 특별하게 사시는 거 같네요. 그런데 저희 프로그램은 사실 전쟁터에요. 짧은 시간 안에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하고요. 자신 있으세요?’ 나는 살짝 당황해서 말했다. ‘어, 상대방과 알아가는 시간이 있다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러자 거기서는 다시 질문했다. ‘만약 민창씨가 상대방이 마음에 드는데, 상대방이 민창씨말고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면 어떻게 할 거죠? 뺏기 위해 최선을 다할건가요?’ 질문을 들으며 약간 벙쪘다.
한 10초 정도 뜸들이다 나는 ‘제가 마음에 들어도 상대방이 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면 가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을 거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또 질문. ‘저희는 불 같은 사람을 원하는데, 민창씨는 나무 같은 느낌이에요. 가슴 터질듯한 사랑을 해보셨나요?’
내가 반문했다. ‘가슴 터질듯한 사랑이 어떤거죠?’ 그러자 그 작가님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 있잖아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끙끙 앓는 거. 못 보면 죽을 거 같고 미칠 거 같은 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연애를 해도 사실 할 건 하는 성향이라 그런 적은 없는 거 같아요.’ 그러자 그 작가님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사랑을 해보지 않으셨다면 저희가 생각했을 땐 조금 아쉬운 거 같네요. 민창씨도 간절하지가 않아보이구요. 혹시나 마음이 바뀐다면 또 연락주세요.’ 30분 정도밖에 미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팅장을 나오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만큼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질문들이 대부분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가고 싶었고, 연애도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미팅 후에는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 후로 한 달 후 또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가 왔다.
TVN에서 하는 연애프로그램이었다. 사전미팅을 하는 걸 알고 있어서 이전처럼 망신을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그러다보니 이전에는 내가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냥 갔기 때문에 망신을 당했으니까 이번에는 프로그램의 정보를 좀 알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프로그램인지 먼저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다.
네이버에는 딱히 나오지 않길래 tvn홈페이지에도 물어보고 미팅 전에도 어떤 프로그램인지 작가님에게 전화를 해서 자세히 물어봤다. 프로그램은 조금 독특했다. 연애에서 끝나는 프로그램들과 달리,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고, 부모님이 나의 데이트를 지켜본다고 했다. 약간 ‘미운 우리 새끼’와 SBS에서 화제가 되었던 ‘짝’을 섞어놓은 느낌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방송에 나간다는 자체가 굉장히 신선하고 좋은 추억이 될 거 같았다. 사전미팅 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프로그램에서 나한테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어머니는 ‘니가 결혼생각을 갖는 것만으로도 좋은 거 같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적어갔다. 일단 내가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평일에 휴가를 내는 것보다 주말에 촬영하는 게 나에게는 용이했기 때문에 촬영 시간과 장소가 궁금했다. 그리고 부모님들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했다. 더해서 컨셉 같은 게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 프로그램에 나오고 싶은 이유는, 본인의 이상형은’같은 예상되는 질문들에 대한 답들도 준비를 했다. 사전미팅 전에 나름대로 잘 준비하고 싶어서 예전에 방영됐던 SBS ‘짝’도 다운받아 다시 봤다. 그리고 사전미팅날이 다가왔고, 떨리는 마음으로 미팅에 참여했다. 미팅실에는 4명 정도의 작가님이 계셨다. 작가님들은 나에게 질문들을 던졌고, 이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대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내가 생각했던 질문들을 던지니 작가님들이 깜짝 놀라셨다. 보통 대답만 하는데, 이렇게 질문하는 참가자는 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프로그램의 취지나 컨셉을 잘 알아야 될 거 같아서 그랬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작가님은 ‘민창씨는 준비된 참가자 같아요. 대답도 잘 하시고 많이 신경을 쓴 모습이 보이네요. 혹시 다음 미팅에 부모님과 함께 오실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하셨다. 일주일 뒤, 어머니와 함께 미팅을 했고 어머니도 예상되는 질문들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가셨기에 미팅을 잘 끝낼 수 있었다. 어머님과의 미팅이 끝나고 작가님은 ‘촬영일자는 00입니다. 그 때 뵀으면 좋겠네요. 제일 처음 확정된 출연자에요. 축하드려요.’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TVN에서 기획한 <한 쌍>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었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고, 너무나도 재밌었다. 만약 내가 전자처럼 질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과연 <한 쌍>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갈 수 있었을까? 많고 많은 출연자들 중에 작가님들이 나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준비성과 세심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질문을 할까? 이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준비를 했기에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상대방을 만나기 전에 ‘그냥’ 만나기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파악해보자. 그러면 상대방도 여러분에게 마음을 열 것이고, 전혀 관련 없어 보였던 부분에서 서로의 접점이 발견될 수도 있다. 준비된 질문은 예상치 못한 행운을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