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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May 09. 2018

헤어졌다.

네 글자의 무거움

연락 좀 하라고 하면, 자기는 먼저 연락하는 성격이 아니라던 – 그래서 항상 나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 – 친구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다짜고짜 욕부터 하지 않고 잘 지내냐고 묻는다. 그리고 뒤에 점 두 개. 굳이 얼굴을 보지 않고서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고, 난 전화를 걸어 친구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약 5초 정도의 적막. 그리고 나직이 뱉은 친구의 한 마디는 

‘헤어졌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 네 글자가 친구의 입을 통해 뱉어지는 순간 그의 감정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헤어진 지 며칠 됐는지, 서로의 어떤 감정선이 불협화음을 일으켜 그렇게 됐는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건지도 궁금했지만, 이런 질문은 당연히 우선이 아님을 나도 몇 번의 이별을 겪어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괜찮냐?’ 

‘괜찮으려고 노력중이야.’ 

‘많이 힘들지?’

‘생각보다 너무 많이 힘들다.’

‘잘 헤어졌어, 걔 별로였어 이딴 개소리는 안할게. 너 만났던 사람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어.’

‘응,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모두가 이별하고 모두가 사랑하고, 낯선 사람은 내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낯선 사람이 되는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그 낯선 사람이 평생 내 사람으로 머물겠지. 깊었던 만큼

충분히 아파해. 그리고 그 아픔의 깊이보다 더 깊게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아, 그리고 혹시나 다시 만난다고 웃으면서 연락하면, 존나 욕하면서 축하해줄게.’    


상실의 고통은 마주하는 현실을 인정할 때 시작되는 것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으면 인간은 신기하게 회피를 택하고,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은 만인에게 공평하듯, 슬픔을 인정하게 되고 인정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의 고통을 가져온다.

슬플 때 울음을 토해내라라는 말이 그냥 있는게 아니다. 종기를 짜내듯 감정이 터져 나올때 비로소 슬픔의 상처를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과 주위사람들의 따뜻한 위로로 치유할 수 있겠지. 

모쪼록 친구도 슬픔을 치유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슬픔으로 인해 조금 더 성숙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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