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식이 좀 된 농구인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로망이 있을 겁니다.
즐농도 좋지만, 파릇파릇한 학생들과 진짜 빡농하며 땀흘리고 싶다..라는.. 저만 그런가요..?
여튼, 그래서 대학원생 아저씨지만 지인을 통해 '훕스'라는 대학교 농구 동아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무섭게 생긴 아저씨라 경계할 줄 알았는데 학생들이 예의도 바르고 너무 착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구력이 15년 정도는 되거든요.
나름 농구로 날고긴다하는 사람들과도 같이 땀흘려보고(제가 그렇진 않습니다.), 보기도 많이 봤습니다.
개중에는 선수출신 여성분들도 있었습니다.
확실히 선출이라 그런지 경기를 읽는 센스나 슛팅이 다르더군요.
그런 분들은 지역 동호회에서는 사실 쉽게 보기 힘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농구를 하는 여성분들이 많이 없어서 그런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 훕스라는 동아리에서 농구를 처음 해보고 충격을 먹었습니다.
중국인, 재일교포출신의 여학생들이 농구를 진짜 잘하더라구요. 남자들과 뛰어도 될만큼 속공도 잘하고 커팅센스도 좋았습니다.
그 중에도 리영이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이 친구는 정말 제가 본(선출 포함) 여성분들 중에 가장 농구를 잘합니다.
왼손 레이업, 리버스 레이업, 커팅, 스크린 후 바운드 패스 등, 실제로 보면 감탄밖에 안나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격이 참 밝아요.
항상 생글생글 웃고, 꺼려질 수도 있지만 남자들과 같이 몸 부딪히며 땀 흘리는 모습이 참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몇 달 전, 리영이가 농구를 하다 새끼손가락이 골절됐습니다.
커팅을 하는 리영이에게 패스가 좀 세게 갔고, 늦은 저녁 야외라 공이 잘 보이지 않았나봅니다. 공이 새끼 손가락을 강하게 쳤고 리영이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손가락이 45도 방향으로 꺾여있었어요.
원주 연세대는 시내와 굉장히 떨어져 있는 매지리라는 곳에 있습니다.
차가 없으면 나갈 수가 없어요.
다들 대학생이다보니 차가 없었고, 늦은 저녁 근처 의료원에서 엑스레이를 찍고 응급처치를 했어야했기에 제 차를 타고 학교를 나가게 됐습니다.
리영이를 걱정하는 친구들 2명과 함께요.
'리영, 괜찮아?'
걱정스런 목소리로 묻자 리영이가 밝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괜찮아요!^^'
저도 손가락을 다쳐봐서 아는데 참 아프거든요. 그런데 주변 친구들과 저를 걱정시키기 싫었나봅니다.
과속 방지턱을 지날때 차가 흔들리니까 작게 신음소리를 냅니다.
아, 미안해 라고 하자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며 다시 밝게 웃더라고요.
그렇게 의료원에 도착했고, 편의점에서 김밥과 음료수를 사다주니 연신 고맙다고 또 고개를 숙입니다.
촌동네인 매지리에 있다가 오랜만에 시내로 나오니 많이 신났나봐요.
'와, 교촌치킨, 롯데시네마!'하며 초롱초롱한 눈이 빛났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많이 친해졌습니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니까,
'펜타콘에 빛나리요!'랍니다.
가사를 같이 흥얼거리며 학교로 도착했습니다.
다음 날 리영이에게 어떻냐고 묻자, 골절이라며 수술을 해야된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래도 도와주셔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나도 덕분에 요즘 빛나리만 듣는다고 하니 웃더라고요.
몇 달 전이지만 리영이의 그 어른스럽고 성숙한 대처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짜증나고 암울한 상황에서, 나는 과연 리영이처럼 차분하고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거 같습니다.
최근에 다 나았냐고 물어보니 아직 농구할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리영이가 얼른 나아, 밝게 웃으며 농구를 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