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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Jul 04. 2018

'남과 여' 설렘과 책임 그 미묘한 간극


사랑의 두 가지 요소는 설렘과 책임이다.
옥시토신과 도파민의 강렬한 분비로 이 사람과 나의 공통점을 어떻게든 찾고, 운명이라고 믿어버리는 설렘. 그리고 그 설렘이 가시고 미지근한 사랑에 대처할 때, 이 사람이 내 옆에 있어야만 한다는 정당한 책임.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상민과 기홍은 2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둘 다 기혼이었으며,
둘째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것.
국제학교 캠프에 아이들을 배웅하는 중, 그들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 때 상민은 기홍에게 담뱃불을 빌리는데 이 부분은 마지막 복선의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먼발치에서나마 확인하고픈 부모의 마음. 상민은 기홍의 차를 타고 함께 멀리서 아이들의 숙소를 확인하고 돌아간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폭설로 도로가 통제되고, 그들은 함께 하루를 보내게 된다.
다음 날, 데려다주며 이름을 묻는 기홍에게 상민은 그저 웃으며 차에서 내린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나고 한국으로 온 상민. 어떤 익숙한 얼굴이 그의 가게 앞에서 서성거린다.
그는 다름 아닌 기홍. 그렇게 기홍과 상민은 순수한 사랑이라는 명목의 불륜에 빠지게 된다.
불륜은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용서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상민과 기홍의 불륜은 불륜이라기보다 사랑에 가깝다. 서로의 입술을 갈구하고, 몸을 탐닉하지만 그 행위들이 야하다라기보다는 오히려 순수하다는 느낌을 준다. 상민을 사랑하지만 인간미가 없어보이는 남편, 기홍을 사랑하지만 너무나도 기홍에게 의지해 부담을 주는 아내.
서로의 결핍과 시기가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져 그들은 그렇게 깊은 늪 속으로 빠지게 된다.
상민과 기홍이 사랑을 나누고 누워있을 때 상민이 기홍에게 물어본다.
‘지금 몇시야?’ 기홍이 몸을 움직여 시계를 보려고 하자, 상민은 그의 배에 얼굴을 가만히 기대고 말한다. ‘괜찮아. 모르는 게 더 나을지도.’ 어쩌면, 상민은 끝날 관계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지도. 흘러가는 시간에 쫓기기보다 함께 있는 순간을 더 소중히 느끼고 싶은 마음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들의 불륜도 끝나게 된다. 기홍의 딸이 기홍을 보는 눈빛과 자신의 아내가 체념한 듯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장면에서 기홍의 책임이 설렘을 짓누른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핀란드. 이혼한 듯 보이는 상민. 그녀는 기홍을 찾는다. 그리고 기홍이 있는 레스토랑에 갔을 때 그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본다. 그 모습을 보고 화장실에 가서 한참을 울다 문 밖을 나서고, 우연히 상민의 뒷모습을 본 기홍은 차키를 들고 뛰쳐나간다. 하지만, 다시 레스토랑을 봤을 때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딸을 보며 차키를 움켜쥔다.

상민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울며 아들의 전화를 받는 그녀를 핀란드 택시기사는 위로해준다. 그리고 택시기사는 상민에게 담배를 권한다. 상민이 묻는다. ‘지금 몇시죠?’
택시기사가 시계를 찾으려 하자, 상민은 ‘괜찮아요. 모르는 게 더 나을지도.’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설렘과 책임 사이에서 설렘을 택한 상민.
그리고 책임을 택한 기홍.
당연히 책임감을 택한 기홍이 우리네 인식상 옳은 선택을 한거겠지만, 모든 걸 포기하면서 설레임을 택한 상민의 결정에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그녀는 온전히 그녀의 삶을 살 자격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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