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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Apr 26. 2020

늦은 저녁, 심야택시에서 벌어진 일

우연히 마주치는 작은 행복

종종 아는 사람들과 간단히 술 한 잔 하게 되면,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져 막차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땐 택시를 이용하는데요. 보통 피곤해 택시 안에서 잠이 들거나 핸드폰을 만지는데, 그 날은 뭔가 특별했습니다. 택시기사분이 좀 젊으신 분인 거 같았고, 제가 좋아하는 치즈스파게티에 파마산 가루를 추가로 뿌린 듯한 느끼한 노래가 기분 좋은 음량으로 재생되더군요. 저는 음악이 좋으면 급하게 멜론을 켜서 어떤 노래인지 찾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면 우연히 어딘가에서 그 노래를 다시 만나는 것 외에는 노래를 찾을 길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검색해보니 eric benet의 still with you라는 노래더군요. 제가 자주 들었던 노래인데 술에 취한 늦은 저녁, 택시 안에서 밖을 바라보며 노래를 들으니 훨씬 더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차창 밖으로는 캄캄한 도로 그 사이 비현실적으로 밝은 몇몇 건물들이 보였고, 그 빛을 안고 흐르는 듯이 가는 택시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냥 그 순간이 정말 좋더군요. 



좋은 노래, 적당한 취기, 캄캄한 도로 속 빛을 내는 아름다운 건물들, 그리고 그 빛을 안고 적당한 속도로 달리는 택시, 다음 날 쉴 수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가짐. 모든 감성의 ‘순간’이 맞으면서 펼쳐진 택시 안에서의 그 순간이 그 주에 고생한 저를 위해 누군가 몰래 선물한 하루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그 날이 마냥 행복하진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제가 예상했던 성과에 한참 미치지 못했고, 스스로 정해놓은 그 날 써야하는 글 할당량을 채우지도 못했어요. 약간의 죄책감과 부담감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늦게까지 술을 마신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택시에 타고 집에 가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지 않은 하루였지만, 마무리는 참 황홀하구나.’ 


그 날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던 글, 성과가 없던 미팅들은 지나고 보면 제 인생에 치명적인 순간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들은 늦은 저녁 그 여유의 순간을 위해 존재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는 작은 행복들 속에서 저는 인생의 근사함을 종종 느낍니다. 그리고 그 근사함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촉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참 뿌듯합니다. 

이렇듯 평범한 일상에서도 가끔 보석 같은 순간들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일상을 흘려보내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그 일상은 우리의 마음에 예쁜 꽃으로 피어나 황홀한 기쁨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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