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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Jun 17. 2020

나의 찌질함을 인정한다는 것

브이콘 같은 사람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지나간 사랑을 회상할 때가 있다.

그녀에게 모질게 상처를 줬던 나, 나의 마음에 큼지막한 못을 박아버렸던 그녀.


시간이 지나고 간간이 지인을 통해, 좋은 사람과 알콩달콩 연애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씁쓸하거나 기분이 묘하기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그녀가 행복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인 걸까, 아니면 의지와 집착 사이,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던 그녀의 마음에 대한 부담의 짐을 드디어 덜었다는 이기심의 발로일까.


다행이라는 감정이 든다는 걸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든다. 무언가를 책임지고 있다는 부담을 항상 느꼈다거나, 아니면 그 마음을 짐짝처럼 여겼다고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을 반추해보면 난 항상 누군가에게 미움이나 상처를 받는 걸 두려워했다. 


그렇기에 사랑에 있어서도 항상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다. 고백을 받을 때도 최대한 그 사람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돌려서 말했고, 고백을 할 때도 최대한 내가 상처 받지 않을 정도의 애매한 스탠스로 툭 던진 후, 상대방이 거절의 뉘앙스를 보이면 ‘뭐,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야.’라며 애써 쿨한 척 했다. 


이 가치관은 연애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사람은 기대하지 않아야 실망하지 않는다.’라는 적합성의 논리로 일관성 있게 연인들을 대했고, 그들은 나의 그런 모습에 연인이라는 큰 틀 안에서도 외로움을 느꼈다.


최근에 친한 형에게 ‘민창이는 혼자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다. 굳이 따지자면 혼자 있을 때 더 빛나는 사람이다. 


적절한 수더분함과, 진지함을 잘 버무리는 편이고 튀는 행동이나 비호감을 줄 수 있는 언어들이나 버릇들을 배제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마음 언어를 잘 읽고, 불편함을 주기보다 먼저 배려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냐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베푸는 것 자체의 기쁨을 느끼기보다, 내가 베풀어서 그 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해주거나, 남들에게 나를 좋게 얘기해주는 것에 훨씬 더 기쁨을 얻는다.


평판을 중요시하고 명예를 좇는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티내지 않으면 구태여 내가 티를 내는 편이다. 찌질할 정도로.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은, 나의 그런 양가성(합리적인 모습, 감정적인 모습)에 반했다가 또 그런 모습에 질려 나를 떠났다.


좋은 이별이란 없다지만, 내가 겪었던 모든 이별은 단순히 씁쓸함에서 끝나기보다 서로에 대한 분노와 비난으로 막을 내렸다. 


그래서 난 역설적으로 사람들과 더욱 더 선을 둔다. 솔직한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비호감을 줄 수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한다.


가끔 이런 나의 모습에 현타가 올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젠틀한 ‘척’을 하는 걸까, 조금 더 편해도 되는데 왜 이렇게 뻣뻣하고 각을 세우는 걸까.


사람들을 잃기 싫고, 그들에게 비호감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런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느니, 차라리 불편한 사람이 되는 게 낫다는 기조를 각 잡힌 셔츠 날처럼 꼿꼿이 세웠다.


하지만 요즘은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비호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려고 노력중이다. 500일의 썸머를 다시 봤다. 너무 솔직해 찌질해보였던 조셉이, 되려 나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인간적이었다. 내 가치관이 변한다는 증거일까.


나는 쿨하지 않다. 나는 찌질하다. 

찌질하기에 되려 편하고, 나를 옮아매던 구속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더 이상 나를 과대포장하고 싶지 않다. 뜯기 전 포카칩과, 뜯은 후 포카칩의 느낌. 쓸모 없는 질소로 가득 채워진 포카칩이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쓸모 없는 불편함, 허세, 어울리지 않는 옷. 이제는 브이콘이 되려 한다. 크기는 작지만 꽉 차고 알찬. 뜯기 전보다 뜯은 후가 더 만족감이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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