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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창 Jul 24. 2020

강남역 9번 출구 근처에서 우산 씌워주신 분을 찾습니다

당신의 배려에 하루가 행복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제 저녁이었어요.

운동을 끝내고 강의를 하러 가고 있는데, 우산이 고장났습니다.

하나 사면 되는데, 집에 우산도 있고 강의장소까지  거리도 걸어서 10분 정도라 객기를 부리며 그 비를 다 맞고 걸어갔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계속 걸어가는데 뭔가 제 스스로가 한심하더군요.

그냥 우산 하나 샀으면 되는데 괜히 그거 아껴서 감기 걸리는거 아닌가 싶고,

여벌의 옷이 가방에 있었지만 갈아입기 전에 이 꼴로 수강생분들과 마주치면 괜히 창피하기도 할 거 같고..

그렇게 체념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근처에 있던 어떤 여성분이 우산을 씌워주시며 말을 거셨어요.

'아이고 어떡해. 우산 없으세요?'

'네, 걷다가 고장이 나서요.'

'아이고. 그렇다고 이렇게 다 맞고 가면 어떡해요. 우산 쓰세요.'

그 분은 우산을 제 쪽으로 넘겨주다시피 하셨습니다. 정작 저를 보호해주고 본인은 비를 다 맞길래,

'너무 감사한데, 같이 쓰고 가요. 저는 이렇게 배려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그 분은 손사레를 치시며, '저는 이미 다 젖어서 괜찮아요. 감기 걸려요~ 얼른 쓰세요. 어디까지 가세요? 바래다 드릴게요.'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오고 날은 춥고 몸은 으스스한데 마음은 참 따뜻해지더군요.

'저 혹시 저 앞에 그레이프라운지 저기까지만 가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요. 아이고. 어떡해요.'

연신 아이고를 연발하시며 우산을 제 쪽으로 밀어주시던 그 분.

저를 안전하게 장소에 바래다주신 뒤, '다음부터는 꼭 우산 쓰고 다니세요. 감기 걸려요.'라고 말씀하시며 가던 길을 가셨어요.

경황이 없어 감사인사도 제대로 못드려 참 죄송했지만, 기분이 참 좋아졌어요.

최악의 날이 될뻔했는데, 그 분의 따뜻한 배려로 행복한 날이 되었거든요.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우산을 씌워주는 배려, 그리고 자신은 괜찮다며 우산을 저에게 다 양보해주시는 희생에 정말 감동했어요.

소나기는 마음에도 오는 거 같아요.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갑작스레 생기거나, 원치 않은 일로 친구와 싸울 때, 오래 준비하던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그 소나기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우산이 준비되지 않은 경우에는 견디기 힘들 수 있어요. 그러다보면 마음이 감기에 걸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피하거나, 혼자 우울해지는 경우죠.

그럴때는 주변에서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필요한 거 같아요. 그 우산은 힘을 주는 긍정적인 말이나 따뜻한 포옹, 그 사람을 믿어주는 눈빛 같은 것들이 되겠죠.

어제 일을 겪으며,

저도 누군가의 마음에 갑작스레 비가 올 때,
배려나 존중이라는 우산을 씌워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경황이 없어 인사를 못 드렸는데 이 글이 전해질 수 있다면 제가 따뜻한 커피 대접하고 싶습니다.

인상착의도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이 글이 그 분에게 닿았으면 좋겠네요. 당신의 배려에 제 하루가 참 행복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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