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휴식
14년 전, 중학교 2학년.
170이 조금 넘는 키에 90kg에 육박하는 몸무게를 가진 나는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잔인하게 차인 후로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그 시작은 걷기. 50m 체력장만 하더라도 하늘이 노랗게 보였던 그 때, 달리기는 나에게 언감생심이었다.
매일 학교가기 전, 집 뒤 금정산을 걸었다.
얼마 정도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자시계를 차고 가서 1시간이 되면 부리나케 집으로 내려와 등교 준비를 했었다.
식단도 독하게 조절했다. 맵고 짠 음식, 탄수화물 파괴자였던 나는, 밥을 반 공기로 줄이고 싱겁게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나니 20kg이 빠졌다.
또 하나의 변화는 1개월 정도 걷다보니 뛸 수 있게 됐고, 뛰다 보니 달리기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있다.
달리기는 외면뿐만 아니라 내면도 변화시켰다.
생각이 굉장히 많은 나는, 뇌에 제대로 된 휴식을 준 적이 거의 없다.
누워있어도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으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최저임금도 못 받고 열정페이로만 일하는 녀석치고 군말이 없어 참 좋긴 하다.(웃음)
그런 내 뇌가 유일하게 휴식을 할 때가 달릴 때다.
달리기를 할 때 난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보다, 온 몸의 촉각을 극대화한다.
트랙 이 편에서 저 편까지.
한 바퀴를 돌았을 때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이 나를 간지럽히고, 지면과 발끝이 닿을 때 느껴지는 무릎의 시큰거림. 걷는 사람들을 추월하고, 5바퀴때쯤 뛰었을때 다시 그 사람들을 추월하며 느껴지는 희열감.
한 번씩 축구를 하며 날아오는 공을 차 주기도 하고,
트랙으로 갑작스레 난입하는 꼬마아이를 피하다 발이 꼬이기도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유일하게 내 뇌가 쉴 수 있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