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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May 18. 2020

계란 후라이에 담긴 엄마의 마음

아침밥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아침을 거르면 힘을 못 내거나 속이 쓰리고 마는 인간으로 살아왔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과 두 딸의 아침을 따습게 지어 꼬박꼬박 먹인 엄마의 오랜 정성에 따른 결과다. 몸이 아픈 날도 마음이 슬픈 날도 엄마는 한결같이 네 식구의 아침을 책임졌다. 그 노고의 무게와 깊이를 채 헤아리지도 못한 주제에 나는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사는 삶을 선택했다.


아이가 없던 1년 4개월간의 신혼과  세돌을 네 달 가량 남겨두고 남편이 상하이로 떠나기까지 2년 8개월 간, 늘 남편보다 야근이 많았다. 첫 해는 주 3회 밤 11시까지 대학원 수업을 듣기도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노동과 정성을 먹고 자란 데다 장손의 귀함까지 장착한 남편을 어머님은 결혼 후에도 살뜰히 챙기셨다. 매일 출근길 전화가 걸려와 아침밥은 챙겼는지를 물으셨고 주말에는 밥을 먹으러 오라고 하셨다.


끼니를 챙기는 과업은 어머님의 자부심이었고 존재 의미기도 했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맏며느리인 내가 이어받아야 함에 추호의 의심은 없어 보였다. 마흔이 다 되도록 끼고 산 귀한 아들이 아침을 먹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으나 자신의 뒤를 이어 며느리가 차린 따뜻한 밥상을 아들과 손자가 받고 살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신혼 초에는 애정 반, 완벽하고 착한 아내 콤플렉스 반에 아침을 차려줘 봤으나 먹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한 끼의 수고를 덜었다. 더군다나 일하는 나에겐 1분이 아쉬운 아침시간이다. 어머님이 주시던 부담 또한 세월과 상황이 어우러져 과거형이 됐다. 단 하나, 남편에게 고마운 대신 혼자 먹는 외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주말이면 쿨하게 식욕 따윈 남의 사정이라는 듯 무심한 그에게 부아가 났다. 똑같이 일하고 더 많이 육아와 살림하는 내가 굳이 남편의 아침밥까지 챙겨 먹일 필요가 없듯 그도 내 식사에 관여하지 않아도 그만인데 왜 그랬을까?


엄마의 살뜰함으로 챙겨주기를 바랐다기보다 아침을 먹어야 힘을 낼 수 있는 내게 무관심한 남편이 야속했다. 식사는 잠시나마 마주 앉아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기에 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그가 못마땅했다. 몇 번 제안을 했지만 여전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와 마주 앉아 식사하며 대화하는 꿈을 살포시 접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함께 아침을 먹을 상대가 생겼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혼자 보다는 이야기 나누며 함께 할 때 더 맛있는 데다 식탁에서 대화하는 가족을 소망했던 꿈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 때로 한잔 했거나  여행지에서 호텔 조식을 먹을 때는 남편도 합세한다. 하지만 보통 그는 아침을 먹는 것을 곁에서 지켜볼 뿐이다. 나는 주말 아침 시간의 여유와 대화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부럽다. 아침을 먹지 않고도 컨디션이 유지되고 식욕이라는 본능에 좌우되지 않는 그의 고고한 평정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0년을 넘어 지켜온 관성이 동력이 되어 매일 아침을 먹고 있다. 스스로 만든 특별히 맛있지도 인상적이지도 않은 반찬 몇 가지를 뷔페식으로 작은 그릇에 모아 담고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친정엄마가 구워주시는 계란 후라이 하나를 밥과 곁들여 10분 만에 후다닥 먹는다. 시간에 쫓겨 영양을 놓칠까 딸을 챙기는 엄마의 마음이다.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할 때도 있고 엄마와 간밤의 아이 이야기, 요즘 생각한 것들, 유치원 등에서 요구한 것들을 화자로 우리 셋은 짧은 아침의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이 허락할 때면 콜드 브루 한 방울 떨어뜨린 우유에 가까운 라테를 홀짝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완성도도 정성도 늘 부족한, 차리기에 급급한 식사의 구멍 숭숭 난 틈새를 주부생활 40년 차를 훌쩍 넘긴 엄마는 촘촘히 메운다. 보통 키에 마른 아이를 위해 잔멸치를 빻아 밥 위에 뿌려주기도 하고 볶음밥 위에 노랗게 계란을 부쳐 하트 모양으로 잘라 스마일 눈 모양을 한 케첩을 뿌려준다.


어린 시절 무뚝뚝하고 묵묵한 엄마의 애정표현은 그랬었다. 고교 시절 더 자고 싶은데 아침 먹으라고 깨운다고 괜히 짜증을 내고 엄마와 한판 하고 등교한 날, 점심시간 도시락을 열면 어김없이 내가 좋아하는 반찬과 단정한 글씨의 한 두 문장이 담긴 쪽지가 들어있었다. 요즘도 엄마는 시간이 없어 대충 국에 밥만 욱여넣고 있는 내게 방울토마토나 딸기를 씻어 슬쩍 가져다 주기도 한다.


아침식사 습관을 만들어준 엄마는 지금도 아이의 아침이라는 중요한 습관을 챙기고 있다. 엄마의 지난한 노고에 여전히 빚진 채 이렇게 또 하루를 연다. 평생을 힘들다 고생이다 소리 한번 하지 않아서 모든 엄마가 그런 줄 알았다. 누군가의 아침식사를 챙긴다는 것은 늘 남보다 일찍 일어나는 희생, 일정량의 노동, 고민과 관심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는 어려운 일이다. 때론 뿌듯했다가 어떨 때는 지긋지긋하다. 자신이 식구를 먹여왔다는 걸 당당하게 내세우고 ‘힘들다, 고생이다 알아달라’ 표현하는 시어머니를 부담스러워할 게 아니라 아무 말 없는 엄마에게 충분히 감사를 표현하고 속히 독립했어야 했다.


당연하게 여겨왔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았던 수많은 아침들.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 속 표현을 빌어 '중요한 직장'과 '중요한 학교'에 나가느라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여겨진 엄마의 오랜 세월의 시간과 결과물들. 은유 작가가 <다가오는 말들>에서 언급했듯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아는 교양인'으로 자라지 못한 나는 결국 엄마와 아내가 되어서야 아침의 의미와 무게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목이 매일만큼 아득한 수십 년의 정성 덕분에 나는 공부를 하고 세상을 보았다. 커리어를 쌓았고 안정적인 삶을 일궈왔다.


아직도 아이를 이유로 엄마에게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 많은 부분을 분리했고 서툴게 헤치고 나가며 좌충우돌하지만 여전히 나는 빚지고 산다. 엄마는 무서운 관성 때문에 나는 무심함 때문에 그렇게 살아온 세월, 그 접점에서 엄마의 '돌보는 손'을 무한히 솟아나는 모성의 본능, 사랑이라며 눙치기엔 받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것을 주느라 엄마가 놓아야 했던 것들은 얼마나 될까? 오늘 아침도 동그란 모양으로 단단하게 익힌 계란 후라이와 물방울 맺힌 방울토마토가 담긴 접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것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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