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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Jun 09. 2020

밥 익는 냄새 가득한 나의 새벽

하루 중 가장 고요하면서도 치열한 시간 새벽 5시, 거실 창에 가로로 길게 놓인 식탁 겸 다용도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쓴다. 이 시간을 오롯이 글 쓰는 데만 쓰는 것은 아니다. 작게는 4분의 1, 많게는 절반쯤 아침 식사 준비로 오가며 보낸다.  

   

눈뜨자마자 화장실에 다녀와 주방으로 간다. 씻어둔 주전자에 물을 붓고 잘 마른 작두콩 서너 개를 넣는다. 차가 끓기를 기다리며 전날 저녁 씻어둔 쌀을 압력솥에 안쳐 버튼만 누를 수 있게 해 놓는다. 냄비에 담은 쌀뜨물에 멸치 몇 개와 다시마 두어 장을 동동 띄워 낮은 불로 둔다.     


냉장고 속 채소 몇 가지와 두부를 깍둑 썰어 국에 넣을 준비를 끝낸다. 다 끓은 갈색의 차를 동그란 대접에 따라 유치원에 가져갈 수 있도록 식혀놓고 내 컵에도 한잔 따라 글 쓰는 자리에 앉는다. 시계는 다섯 시에서 20분 정도 지나 있다.    


거기서 거기인 비슷한 메뉴, 쥐어짜도 나올 것이 없는 음식 솜씨라도 밥 짓는 일은 멈출 수 없는 과업이다. 종종 친정엄마와 외식이라는 구원투수의 힘을 빌어보지만 결국은 내 힘으로 무엇이든 만들어 내어 나와 아이를 먹여야 한다.     


종일 엄마의 퇴근을 기다리느라 말도 일도 많은 아이를 두고 무언가를 하는 일은 심적으로도 효율적으로도 편치 않다. 아이가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잠들어 있는 고요한 새벽 시간의 일부를 헐어 하루 먹을 밥을 짓는다.    


반복하면 잘하게 된다지만 짧은 시간에 급히 만드는 음식 솜씨가 크게 늘 턱이 없다. 한 번은 김밥을 말았는데 참기름을 바르려고 보니 볶아놓은 당근이 저편에 놓여 있었다. 서두르다 깜박했다.   

  

이음새를 살살 떼어내어 당근을 넣고 다시 밥으로 붙였다. 매끈했던 표면이 쭈글쭈글해졌다. ‘맛은 더 좋아졌겠지, 입에 넣으면 똑같은데 뭐.’ 하고 합리화를 했지만 영락없는 실패작이다.    


음식 맛만 어설프면 좋으련만 한정된 시간에 쫓기며 쓰는 글도 다르지 않다. 새벽 글쓰기의 마감 시간은 오전 7시. 늦어도 그 시간에는 모든 것을 내려두고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글이 안 풀리면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휴대폰으로 정신없이 마무리해야 해서 마음이 분주해진다.  

   

시작은 매일 쓰기의 미션을 완수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쓰면 쓸수록 내면의 허기가 가셨다. 자주 허기지는 나를 위해 매일 글을 지었다. 이어가다 보니 내면의 살이 통통히 올랐다. 밥 짓는 일처럼 몸이 안 좋아도 기분이 나빠도 핑계를 대며 그만둘 수 없는 의식이 되었다. 이왕 짓는 글, 남도 살찌우는 글을 쓰고 싶지만 아직은 마음만 가득하다.

    

갓 지은 밥이 맛있기 마련이지만 글을 쓰다 보면 밥솥 버튼 누르는 것을 자주 잊는다. 약한 불에 올려둔 멸치육수도 졸아들기 일쑤다. 밥도 글과 마찬가지로 7시가 마지노선이다. 7시 반에는 밥상 앞에 앉아야 지각을 면할 수 있기에 미리 버튼도 눌러두고 알람도 맞춰놓는다.

   

쾌속 기능으로는 평소 즐겨 먹는 귀리와 현미가 섞인 밥은 충분히 익지 않는다. 30분 걸리는 취사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자리에 앉아 거실로 퍼지는 압력솥의 추 돌아가는 소리와 밥 냄새를 맡으며 빈 화면을 응시하고 키보드 자판을 두드린다. 밥이 익어가는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으며 내 글도 익어 간다.  

  

여러 가지로 글쓰기와 밥 짓기는 닮았다. 시간과 정성을 충분히 들여야 한다. 경험한 맛과 음식 안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한정된다. 요리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은 없지만 그 과정은 사뭇 비슷하게 느껴진다.     


엄마는 손은 바삐 움직여도 해야 할 일을 생략하지 않는다. 같은 재료도 다채롭게 활용해 전혀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낸다. 오이무침도 삼색 파프리카와 보라색 양파를 넣어 훨씬 보기 좋게 만든다. 일상적인 밥과 반찬을 짓는데도 정성과 노력은 남다름을 부여하는 열쇠다.

    

하지만 음식을 지어내는데 급급한 나는 완결에만 신경을 쓰느라 중요한 간이나 양념을 빼먹기 일쑤다. 겉으로는 그럴싸하지만 먹어보면 표가 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정해진 시간에 급히 쓰는 일은 늘 ‘완결’에 의미를 두게 만든다. 그런 날들이 쌓이다 보니 습관이 됐다.    

 

내가 쓰는 글은 내가 만드는 음식과 매우 닮았다. 밥솥이 하는 밥조차 급히 안친 날에는 표시가 난다. 귀리는 설익어 딱딱하고 흰 쌀은 질퍽거린다. 인생 칠 년, 아직 엄마의 음식 외에 다른 것을 많이 먹어보지 못한 아이는 엄지 척을 날려주지만 나는 안다. 오늘 무엇이 부족했음을. 나라는 소재를 꺼내어 짓는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설익은 문장과 사유가 군데군데 씹힌다. 싱겁거나 짜다.   

  

밥 익어가는 냄새를 맡아가며 매일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 하고도 여섯 달째가 되었다. 새벽에 눈을 떠 쓸 것 없는 막막함을 마주하다 보니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어 답답한 시간이 왔다. 마무리 짓기에 쫓긴 습관이 쌓여 꺼내어 놓기 급급한 글에서 문득 멈추어 바라본다.   

  

한정된 경험과 표현에 맴도는 글을 어떻게 주린 배를 채우는데 그치지 않고 잘 먹었다 만족할 수 있는 한 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다. 재료는 무엇을 가져다 쓸 수 있을까? 충분히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익혔나? 읽는 사람은 어떤 맛을 느낄까? 내 입맛에는 어떠한가?     


시간과 마음을 담아 다시 찬찬히 지어보고 싶다. 아직은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내놓을 수 있는 것도 한정되지만 제대로 지어 소박한 밥 한 끼라면 충분히 누군가의 지치고 고픈 배를 위로할 수 있을 테니까.

   

당장 허기를 채우기 급급한 글에서 지친 마음에는 작은 위로가, 고픈 배에는 고소한 달콤함이 퍼지는 그런 글을 짓고 싶다. 오늘도 밥솥 추가 ‘치지직’ 내는 소리와 함께 고소하게 퍼지는 밤 냄새를 맡으며 자판을 두드린다. 살포시 그런 소망을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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