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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Jun 16. 2020

쓰면서 하는 삶에 대한 공부

매일 글쓰기 모임에서 배운 것들

매일 아침 일어나 막 끓인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창가에 자리를 잡은 테이블에 앉아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맥북 에어를 부팅한다. 이 녀석으로 매일 글쓰기를 한 지 1년 하고 6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시댁과 직장에서의 관계에 대한 고민, 하소연, 감정을 풀어놓다가 점점 나를 들여다 보기까지... 쓰는 일은 글쓰기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의 체력까지 키워주었다. 글을 쓰고 집을 나서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내면의 탄력이 다르다. 먹으면 피부가 탱탱해진다는 콜라겐이 내겐  글쓰기다.


지난달부터는 오랜 기간 쓰기를 이어온 이웃들과 함께 추가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 모두가 나름의 글쓰기 고민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글로 이루고자 하는 욕심도 있다. 그 가운데 쓰는 일은 힘들기도 하지만 행복하다. 이 시간을 통해 글이 담아야 이야기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같은 점에서 출발해도 우리가 담은 이야기와 도달하는 지점은 각양각색. 삶과 그 안의 사람이 보이고 내가 가진 한계와 이야기의 폭이 넓어진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아포리즘에 그치지 않는 것임을 절감하고 있다.


속한 모임이 늘 그래 왔듯이 전문가가 글을 평가하거나 쓰기의 코치를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우리의 시간이 '이야기(삶)를 담은 쓰기'라는 것을 배우는데 결코 모자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는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꾼>에서 언급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한 구절,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페르시아가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그는 이집트의 왕인 프삼메니토스에게 모욕을 주고자 했다. 프삼메니토스의 딸이 하녀 신세가 되어 물동이를 지고 우물로 가는 모습에 모든 이집트인이 슬퍼했지만 정작 왕은 땅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어서 아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갔다. 프삼메니토스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포로 행렬 속의 늙고 초라한 한 남자가 자기의 오랜 시종임을 알고서, 그는 주먹으로 머리를 치며 극도의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왕의 슬픔을 해석하는데서 발터 벤야민은 친구들과 모여 토론을 했다. 가족과 본인의 운명은 같은 것이나 죄 없는 시종의 희생은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이야기부터 실제 삶에서 우리는 감동받지 않으나 무대 위에서는 감동받는다는 것까지. 벤야민도 해석을 붙였다.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왔다고. 벤야민과 친구, 연인까지... 한 주제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이 일화에는 반전이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역사>를 실제로 확인해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언급된 프삼메니토스가 본 노인은 시종이 아닌 친구였고 왕 자신의 해명 또한 달려 있었다. 자기 집안의 고통은 울기에는 너무나도 크나 친구의 고통은 울만 하다고. 거기에서 신형철은 말한다. '우리가 벤야민에게 속은 것인가? 하지만 그가 소개한 해석 덕분에 우리는 슬픔에 대해 공부한 것'이라고.   

출처 : unsplash


지금 글쓰기 모임 멤버들과 하고 있는 작업도 발터 벤야민이 던진 질문, 토론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의 글을 통해 한 개인이 가진 이야기와 삶, 슬픔을 공부하며 다시 자기만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마침표로 쉼표를 찍고 묵힐 글은 그 힘 덕분에 더욱 자신다운 글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감한다. 5주에 걸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 하면서 감탄하고 배웠다. 이야기란, 삶이란, 글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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