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이름은빨강 Jul 28. 2020

나를 만든 수많은 호의

스쳐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리며

사무실 내 옆은 시간제 아르바이트생의 자리다. 우리 회사는 각 부서별 신청을 받아 주 10~20시간 이하로 아르바이트생이 근무하며 업무를 보조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여러 직원들이 요청하는 보조업무를 처리하고 화장실 간 사이 나를 대신해 간단한 민원도 봐준다. 부서에 온 이후, 수많은 아르바이트생들이 이 자리를 거쳐갔다. 희미한 인상에 이름도 가물거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도 잘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며 지금도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도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데다 업무 중 하나가 아르바이트생을 관리하는 일이기도 해, 가끔씩 학생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다. 오래전 나도 공공기관에서 근로 업무를 해 봤기 때문에 동질감도 든다.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한 아르바이트생은 친구들에게 말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고 면접시험의 자소서 쓸 때, 봐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취직이 된 후 선물을 사 들고 놀러 왔다. 김영란법 때문에 호의로 사 온 선물을 선뜻 받지 못하는 요즘이 되었지만 밥도 사 주고 축하도 해주었다.


나이 불문 처음 본 사람에게 쓱 말을 놓는 편이 못 된다. 함께 근무한지도 오 년 째인 나이 차도 꽤 나는 막내 직원에게도 아직 존칭을 쓴다. 열다섯에서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편하게 한 지 이제 이 년 남짓 되었다. 처음에는 영 어색하더니 말을 놓자 상대가 편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분명 느껴져서 '이것도 괜찮구나.' 싶다. 말의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말을 전하는 사람의 태도와 말투에도 많은 것이 담겨 있을 테니...


이번 봄에 코로나로 아르바이트생 업무 개시일이 계속 늦어지다가 직원들 요청도 있고 해서 본부 방침에 맞춰 근무를 시작했는데 드물게 제대한 남학생이 왔다. 일도 잘 하지만 참하다. 그만한 또래의 아들을 가진 선배 여직원도 그렇게 느꼈나 보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생 곁에 와서 한참을 머물며 실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런저런 인적 조사를 하더니 자취를 하고 있으니 밥을 잘 챙겨 먹여야겠다고 했다. 원래도 점심 먹을 때 같이 갔지만 더 챙기게 되었다.  


우리 사내 식당에 대해 아르바이트생이 보이는 반응은 호불호 그 자체다. 중간이 없다. 보통은 지금 일시적으로 닫은 식당 1을 좋아하는데 드물게 직원들이 좋아하는 식당 2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아르바이트생은 후자였다. 식당 2는 식사시간 중 일시에 수백 명이 들고나며 식사를 하기 때문에 정말 분주하고 정신이 없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마주 보기를 금지하고 있어 안 그래도 복잡한 식당이 자리 부족으로 더 혼잡해졌다.


어느 날, 식당의 혼잡함은 최고조였다. 우리는 결국 뿔뿔이 흩어져 각자 자리가 난대로 앉아서 밥을 먹었다. 나와 막내 직원은 나란히 자리를 잡았으나 선배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은 각각 따로 앉았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 스텐 식판에 숟가락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와 다른 소음들이 섞여 울리며 공간을 가득 채웠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없이 먹었다. 그날 반찬은 사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와 미역국, 소고기 굴소스 볶음이 나왔다.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입구에서 다시 직원들을 만났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통로를 걸어가며

"그래, 밥은 입에 맞았니?"

하고 묻자  아르바이트생이 불쑥 말했다.

"네. 맛있었어요. 이 식당에는 왜 샐러드에 소스가 없을까?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소스 없이 생야채만 다 먹고 나니 테이블 바로 앞에 놓인 샐러드 소스가 보였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자율 배식대에는 위생을 위해 샐러드 소스를 비치하지 않는다. 테이블에 놓아 각자 덜어먹게 하는 시스템이다. 테이블에 놓인 소스 그릇을 못 본 모양이었다. 아르바이트생의 천진하고 귀여운 실수에 안타까우면서도 엄마미소가 되었다. 선배 직원이 말했다.

"잘했다. 생야채로 먹으면 몸에 더 좋다."




그 시절의 나도 그랬다. 한정된 세상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나이였고 모르는 것이 참 많았다. 경험이 없다 보니 몰라서 못한 것들이 더 많았다. 처음 가 본 곳의 시스템을 몰라 돈을 내고도 서비스를 다 누리지 못하고 일부분만 경험해 본 적도 있었고, 실수로 무언가를 잘못 눌러 고장 낸 것 아닌가 잔뜩 긴장한 적도 있었다. 그것도 모르냐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든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지금 내가 우리 아르바이트생을 바라보듯 그 천진함을 좋아하고 도와주려 했다.


근로 근무 시절, 나를 아껴주었던 구청의 한 서무 언니는 내가 아침은 먹고 왔을까 살뜰히 챙겨주었고 모르는 일을 물어보면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지금이 제일 예쁠 때라며 꿈이 있는 내가 부럽다. 꼭 이룰 거야’ 하고 종종 힘을 북돋워주었다. 참 따뜻한 분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내 곁의 아르바이트생들을 보며 그 언니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아르바이트 생이 하는 귀여운 실수들을 보며 잊고 살았던 스쳐 온 따스한 인연을 생각한다. 그들 덕분에 임시로 거쳐가는 곳이지만 좋은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모르는 것에 얼굴 붉히면서도 부끄럽기보다는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실수로 웃어넘길 수 있었다. 업무 시간에 스타킹을 사 오라는 등 개인 업무를 아무렇지 않게 시키거나 갑질을 하는 사람도 가끔은 만났지만 대부분 따스한 말과 태도로 나를 존중해 주었고 그들로부터 사회생활의 기초를 배웠다.


일하다 출출하지 싶어 서랍 속 간식을 꺼내 건넨다. 우리 참한 아르바이트생이 부끄러운 듯 미소 지으며 깍듯이 목례를 한다. 하나 더 주고픈 마음이 절로 드는 백만 불짜리 미소다. 그 미소를 보며 잊고 살았던 지금 나를 만든 무수한 호의들을 떠올린다. 어딘가에서 여전히 누군가에게 친절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 분명할 그분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아마 만날 일은 없겠지만 덕분에 참 감사했다고 조용히 되뇌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월급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