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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Aug 10. 2020

옷에 대한 유난한 집착

보이는 모습에서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

아이와 실내 클라이밍 센터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를 들어서자 대여섯 걸음 앞에 20대로 보이는 여자 둘이 팔짱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오른쪽 여자가 어깨에 둘러매고 있는 캔버스 천에 박힌 알파벳 로고가 눈에 익었다.

'저 로고, 어디서 봤더라?'


직진하는 여자들과 헤어져 왼쪽으로 모퉁이를 틀며 우리 동 앞 놀이터까지 왔을 때였다.

'맞다. 저거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구나... 아, 추억 돋아~ 다시 유행이 돌아왔나 보네'


중고교 시절, 당시 신세대였던 X세대 사이에 엄청난 유행을 이끌었던 브랜드로 좋아했던 남자 친구가 입고 다녔던 프리미엄 청바지의 대명사였다. 지퍼 부분에 브랜드 명이 가로로 붙었고 디테일이 세련되던 청바지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1년을 꼬박 붙어다니다 사귄 건지 아닌지 애매하게 헤어졌다. 실연의 슬픔에 공부도 내팽개치고 책만 줄곧 읽었다.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만화책과 소설책을 권당 2-500원 정도를 받고 빌려줬는데 한 권씩 새 책을 고르는 것도 귀찮아서 읽기 시작한 것이 '삼국지', '토지', '태백산맥'같은 대하소설이었다. 수업에 건성으로 참여하고 쉬는 시간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몇 시리즈의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시간이 훌쩍 흘러 있었고 실연의 아픔도 어느 정도 사그러 들었다.


그 친구는 전통적인 부자 동네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대저택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부도가 나서 바닷가 근처 오래된 연립 맨션으로 쫓기듯 이사를 간 지 1년쯤 된 상황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걸치고 다니는 옷은 기백만원이 넘었다. 패션의 패자도 모르던 순진한 여고생이던 내가 어떠냐고 묻는 다른 친구에게 그 아이가 말했다 한다. '다 좋은데 촌스러워서.'였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옷을 사달라고 철없이 엄마를 조르기도 했다.


늘 친척에게 물려받거나 이모가 가끔 월급 받아 사주는 옷 말고는 제대로 된 옷이 없었지만 별 의식 않고 살아온 내게 촌스럽다는 자각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입는 브랜드 옷을 사 입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첫사랑에게서 받은 수치심의 기억은 오래 각인되었다.

유독 옷에 집착한 것은 그 아이의 그 한마디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련된 모습으로 어디선가에서 마주치면 나를 놓친 것에 큰 후회를 하게 만들어 주리라 다짐했다. 시간이 지나며 첫사랑의 기억이 그저 웃는 추억이 되었을 때도 세련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늘 패션에 신경을 썼다.


형편에 따라 지하상가의 옷들에서 시작된 쇼핑 욕구는 백화점의 캐주얼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로 이어졌다. 수입의 상당 부분을 옷으로 바꿨다. 옷을 사들고 오면

"옷이 저래 많은데 또 옷 샀나?"

고 다그치는 엄마가 두려워 숨기기 바빴고 더 가치로운 일에 쓰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순간의 만족감에 중독되어 자꾸만 옷을 사들였다.


덕분에  이후 누구에게서도 '촌스럽다.'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어딜 가나 누구에게서나 '감각  있으시네요.   입으시네요'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적지 않은 돈과 시간을 옷과 맞바꾼 결과다.  말은 오래전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결핍의 욕구를 채우고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회복 의식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계점을 넘어선 , 습관적으로 옷을 사는 경험이 거듭될수록 쌓이는 옷이 차지하는 공간, 재정적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무리한 소비의 후유증과 찰나의 행복 이후 따르는 허무함 같은 것들도 깊어져만 갔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스틸컷


20대에 좋아했던 '섹스 앤 더 시티'는 한 때 많은 여성들의 로망이었다. 대도시 뉴욕에서 성공한 네 명의 여성과 그들의 일과 사랑 이야기를 보며 언젠가 저런 삶을 살 수 있기를 꿈꿨다. 그녀들이 걸친 명품 옷과 구두, 가방은 곧 그녀들의 세련된 감각과 더불어 성공한 삶의 은유였다. 그 삶을 동경하며 그녀들처럼 멋진 모습이 되면 사랑도 더불어 따라오리라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옷에 나의 정체성, 가치, 감각, 능력을 지나치게 부여한 결과 옷은 나의 건강한 삶을 집어삼켰다. 유행은 끊임없이 변했지만 따라잡기에는 버거웠고 옷 말고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이 있었다. 세련됨에는 많은 기준들이 있었다. 옷이 태가 나려면 적정 수준의 몸무게와 몸매를 유지해야 했고, 피부와 헤어 스타일도 받쳐줘야 했다. 걸맞은 명품가방과 구두도 암묵적인 룰이었다. 손과 발도 패션에 맞게 관리를 받아야 했다. 모든 것을 다 하고 살기는 어려웠다.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투자이며 노력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옷을 고르고 자신을 꾸미는가?'

수개월 남은 카드 할부금과 텅 빈 통장잔고를 보며 위기감이 찾아왔을 때 조금 달라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섹스   시티의 주인공 캐리도 그랬다. 어떤 시즌의 에피소드다. 그녀의 신발장에는 집을 살만큼의 명품 구두가 수집되어 있었지만 정작 그녀는 구두와 옷을 사느라   돈이 없었다. 애인 에이든과 헤어지고 오갈 데가 없어진 그녀는 그것들이 자신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음을 깨닫는다. 캐리는 그러고도 여전히 핫하고 힙한 패셔니스타 뉴요커로  나가는 칼럼니스트였고 무언가를 걸치는 것이 회자되며 가치를 생산하는 인물이었지만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변화해야만 했다. 오래전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에서 탈피해서 나만의 정체성으로  옷을 입고 싶었다. 옷을  기쁨보다 죄책감과 후회가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늘어갈  즈음, 결혼을 했고 생활의 변화는 더디지만 조금씩 오랜 옷에 대한 집착에서부터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Photo by Markus Loke@unsplash


여전히 옷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색감, 세련된 디테일의 디자인을 보면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그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면 지름신의 욕구를 강하게 느낀다. 종종 좋아하는 브랜드의 매장을 기분전환 삼아 한 바퀴 둘러보고 그것과 비슷한 느낌의 보세 옷을 두어 벌 구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것을 걸치는 순간 행복하지만 그것이 결코 더 나은 나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이 나를 규정짓는 일은 없다는 것을. 보이는 모습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위한 꾸밈이 되어야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오래도록 부둥켜안고 살았던 옷들이 가득 걸려있는 옷장을 오랜만에 열어본다. 어떤 사연을 가져서, 가격이 얼마여서, 유행이 돌아올 거라서 못 버리고 이고 지고 살았던 옷들을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정리해야지 하면서 줄곧 놓지 못했던 오랜 집착을 이렇게 떨쳐버리고 진짜 옷에서 자유로워질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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