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좌절된 욕구를 관계에서 찾는 우리들의 불안과 외로움, 고통의 이야기

by 내이름은빨강

금요일입니다.

오늘은 흐리려는지 새벽달도 뜨지 않았네요.


오늘은 강렬한 느낌의 그림책을 한 권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마거릿 와일드가 쓰고

론 브룩스가 그린

<여우>입니다.


표지가 강렬하죠?

같이 읽어보시죠.



책을 열면 온통 새빨갛게 타오르는 숲이 보이고요.

새 한 마리를 입에 문 개 한 마리가 등장합니다.



거센 불길에 날개를 다친 까치를

한쪽 눈이 안 보이는 개가

자신이 사는 동굴로 데려가 간호해주려 하죠.


하지만 까치는 개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날지 못할 거라는 까치에게

나도 한쪽 눈이 안 보인다며 위로하지만

까치는 동굴 속에 틀어박혀 있다가

며칠 만에 나옵니다.


그때 개가 다가와 까치를 등에 태우고 달립니다.


"날아라. 날아!

내가 너의 눈이 되어 줄게.

너는 나의 날개가 되어줘."


둘은 몇 계절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죠.

불안한 눈빛의 여우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요.

까치는 두려워하지만

개는 여우를 반겨주며 같이 지냅니다.


그들이 달리는 모습이

정말 특별하게 보였다는 여우가

자신의 다친 날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안 까치는

동굴 안이 여우의 냄새로 가득 찬 것을 느껴요.


분노, 질투, 외로움의 냄새로요.


까치는 개에게 여우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고

조심하라고 합니다.

개는 좋은 아이라고 도리어 두둔하죠.


개가 잠든 밤, 여우는 까치에게 속삭입니다.

개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자신과 함께 가자고요.

까치는 거절해요.

하지만 개의 등에서 까치는

이건 진짜 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죠.



어느 날 밤, 까치는 여우와 떠납니다.

발이 닿지 않는 것처럼

빠르게 달리는 여우의 등에서

까치는 진짜로 자신이 날고 있다고

가슴이 벅차올라요.


개와 마찬가지로 여우는

까치에게 또 다른 날개가 되어줄까요?

뒷 이야기는 그림책으로 직접 확인해 주시고요.




까치는 날고 싶은 갈망이 좌절되었죠.

개가 대신해 날개가 되어 주지만

여우가 나타나면서 자신의 상처 입은 날개를

더욱 강렬하게 인식합니다.

원래 나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좌절된 삶을 다시 갈망해요.


이미 까치는 개에게 경고까지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우를 따라나선 까치를

알 것도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누리고 가진 관계에

권태를 느끼고

좌절된 꿈을 다시 꾸고 싶어 하니까요.


한편 눈이 먼 개는 여우의 냄새를,

까치의 갈망을 정말로 몰랐을까요?


한쪽 눈이 먼 개는

어쩌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느라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누구도 사랑하지 않을 존재인 여우는

까치에게 개가 주지 못한 엄청난 환희를

짧게나마 맛보게 해 줍니다.

여우를 따라나선 까치는

비로소 날개를 잃은 뒤의 자신과 직면하게 되죠.


개에게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자신이 되어

까치는 숲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한쪽 눈이 먼 개 곁이 아니더라도요.


아마 까치는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날개를 잃은 자신조차 사랑할 존재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요?




주말 잘 보내세요.



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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