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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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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Sep 14. 2020

아이와 함께 하는 아침의 풍경

아들과 나 : 매일 아침 손 잡고 나서는 10분의 산책길

창밖 하늘 위로 손톱 같은 달의 꽁무니가 어렴풋이 보이다 두터운 구름 사이로 이내 사라진다. 문을 꽉꽉 닫아두었음에도 어디선가 바람이 스며들어 드러난 팔에 서늘한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수시로 이불을 걷어차는 아이가 배를 내어놓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보고 물 한잔을 들고 거실의 내 자리에 앉아 아직도 깜깜한 새벽 불빛을 천천히 바라본다.



때가 되면 달이 차고 줄고 사라지고 계절이 오고 또 가고 절기가 돌아오는 일. 그 사이 변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마음임을 아름답게 그려낸 한 편의 영화가 생각나는 계절. 지나가버린, 놓쳐버린 것들을 그리워하며 자신이 머물던 사막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 주인공처럼 아침에 보았던 것이 저녁에는 다를 것이 분명한 일상의 풍경을 떠올리며 오늘도 일어나 하얀 화면을 마주하고 앉았다. 구름이 바람에 떠밀려 다시 달과 샛별이 모습을 드러내고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요즘 급속히 떨어진 체력 때문에 퇴근 후나 주말,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무기력하게 흘러간다. 간단한 요리와 청소, 빨래 같은 일상적인 일을 겨우 하고 혼자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아직 읽을 수준은 아니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 분명한) 아이 곁에 앉아 책을 펼치려 들면 보던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읽어주는 정도다. 그조차 한 챕터 정도 읽어주다 보면 자꾸만 잠이 쏟아져

“엄마~~!”

하는 아이의 옆구리 공격을 몇 차례고 받는다.


밤 9시만 되면 서서히 졸음이 쏟아져 10시까지 겨우 버티는데 토요일 모처럼 그림책 테라피스트 동기생들과 새벽 1시까지 온라인 모임을 했더니 어제는 평소보다 더 자고도 하루 내내 피곤했다. 이런 엄마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된 아들은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잘 맞춰줬다. 대체재가 없다 보니 발달할 수밖에 없는 능력인데 고맙고도 짠한 일이다.


월요병을 나보다 더 심하게 겪는 아들은 늘 일요일 밤이면 실컷 놀고 늦게 자자는 부탁을 한다. 의지로 졸음을 참을 수 있었는데 최근 몇 주 간 무슨 변화가 있는지 나도 모르게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 사이에 아이는 놀자고 애원을 하고 화도 냈다가 지쳐서 잠이 든다. 비몽사몽 하면서 아이를 달래주기도 하고 요구하는 물 한잔을 가져다주는데 도무지 잠을 떨칠 수가 없다. 정신이 들면 이미 아이는 곁에서 고이 잠들어 있고 시곗바늘은 새벽 1-2시를 가리키고 있는 날들이 허다하다.


어제도 비몽사몽 한가운데 아이가

"요즘 엄마가 변했어. 나랑 잘 놀아주지도 않고."

라고 했다. 엄마표 영어나 책 육아, 생태 육아... 부지런한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하는 것들 뭐 하나 해 준 것은 없지만 나름 아이와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려 노력해 왔다. 요즘은 눈을 뜨면 글쓰기에 몰입하고 회사에 갔다가 지쳐서 돌아와 맥없이 지내다 잠이 쏟아지면 쓰러지기 바쁘니 아이에게는 영혼 없는 엄마의 변화가 고스란히 느껴졌을 것이다.


별일 없이 잘 크고 있는 편에다 내 안의 욕구에 급급해서 아이에 대한 고민과 배려가 뒷전이었던 것이 솔직한 현실. 거기에 체력의 급격한 저하까지 가세했다. 할 말이 없다.


요즘 아침의 우선순위를 조금 바꾸고 있다. 마침 운동이 절실한 시점이기도 하고 변화도 필요했다. 매일 새벽 일어나 쓰고 생각하고 읽던 시간을 내어 아이와 손을 잡고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러 나선다. 걷는데 비해 준비해 나서고 돌아와 정리하는 시간이 더 많은 비효율적인 시간이라면 시간이지만 하루의 가장 활기찬 순간을 잠깐이나마 나눌 수 있어 아직은 좋다.


걸으며 나누는 이야기란 사소해서 이내 잊힐 것들뿐이다. 하지만 걷고 보면서 추억되기 전에 그저 느끼고 싶다. 아이가 원하는 것도 내게 필요한 것도 그것이 아닐까? 구양봉이 사막을 떠나기 전 바라본 것처럼 붙잡을 수 없는 풍경이라도 바람 불어 곧 추억이 될 이야기라도 이 순간만은 마음속에 고이 담아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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